• 문화재단이프
  • 이프북스
  • 대표 유숙열
  • 사업자번호 782-63-00276
  • 서울 은평구 연서로71
  • 살림이5층
  • 팩스fax : 02-3157-1508
  • E-mail :
  • ifbooks@naver.com
  • Copy Right ifbooks
  • All Right Reserved
  • HOME > IF NEWS > 문화/생활
  • [36회]똥파리 공부연대기-2
    진성일 / 2013-11-26 01:44:55
  • : 언니가 체스 둘 때 피아노에서 자는 왕과 순한 양 그리고 동명이인

     

    04

    니체가 다소 시니컬한 목소리를 낸다면, 스피노자는 에티카를 통해 인간과 신, 그리고 우주에 대한 무한긍정의 힘을 들려줬다. 강좌는 재밌었지만, 세미나는 난해했다. 본 텍스트를 요약, 정리할 수 없는 발제문이 나타났다. 그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세미나 이후 문탁에서 이 말이 유행어처럼 한 동안 회자되기도 했다). 육아에 익숙해지고 수월해지는 반면, 문탁의 활동은 갈수록 버거워지는 시점에서 무엇이 그의 코나투스를 높이는 쪽의 일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보충 : 이와 같은 논의의 결과,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위에서 변수로 제시한 두 가지, 즉 리듬의 지속과 정서의 긍정적 활용은 결국 자신의 욕망과 관련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단단하게 짜놓은 우리의 ‘에티카’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1)

     


    1)스피노자, ‘에티카’ 에세이(2010, 청량리) 중


     

    ▲에티카-스피노자
     

    그 이후에 만난 왕양명은 분별과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 공부라고 그에게 들려준다. 게다가 몸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의 바름을 얻는 것이라는 스피노자와 비슷한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니체에 이어 스피노자 그리고 왕양명까지 세 명 정도의 친구를 만나게 되니, 세미나가 아니라 발제를 해야 책이 남는다는 걸 똥파리도 느끼게 되었다. 책 중에는 자기와 맞는 책이 있는 모양이다. 발제가 재밌는 책이 있는 반면, 되게 하기 싫은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비슷한 시기에 만난 세 명의 친구는 그에게 하나로 이해되었다.

     

    선생이 대답하셨다: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근심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있어도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에 어찌 근심과 즐거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만 지니고 있어서는 안 될 뿐이다. 문제는 개와 할머니의 문제를 측은지심으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치우쳐 천리 본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2)

     


    2)왕양명, ‘전습록’ 에세이(2011, 청량리) 중


     

                                                                                      ▲왕양명

     05

    2011년, 육아휴직 기간이 지났는데도 똥파리는 회사에 가기 싫었다. 3) 한발 물러나 1년 동안 자신이 속했던 리그를 되돌아보니 이제는 달리 보인다. 건축설계는 밥벌이일 뿐 기실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월급을 많이 준다 해도 다시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문탁이 운영되는 걸 보면서 돈을 ‘함께’ 쓰는 방법도 배웠다. 공부 속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맛봤다. 아이랑 놀다보니 주말에만 아이랑 ‘놀아주는’ 아빠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해 3월, 그는 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이를 위해선지, 놀기 위해선지, 공부를 하고 싶어서인지 알 길이 없다.

     

    이후 그렇게 1년을 더 쉬면서 애를 봤다. 봄이 지나면서 겸서는 오전반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남는 시간에 문탁에 좀 더 드나들었다. 텃밭에서 삽질도 하고, 시다 노릇하면서 작업장도 만들고, 악어떼에선 고딩들과 재밌게 놀기도 했다. 공부는 책 속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여기’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밥’을 너무 급하게 먹고 있었다.

     

    책을 몇 권 읽다보면 빠지게 되는 함정은 자만이다. 읽은 책의 내용이 세상에 진리인양 누구를 설득하려거나, 이제 이 정도 책은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똥파리 역시 아내에게, 친구에게 책으로 많은 상처를 줬고 또 싸웠다. 그 해 연말, 똥파리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많은 남자들을 만나려는 실험을 ‘건축세미나’를 통해서 했다. 하지만 그는 욕심이 앞섰고 남자들은 문탁에 대부분 처음이었다. 밀도 없이 겉돌던 건축세미나는 시즌1을 끝으로 참패를 아쉽게 마무리했다. 4)

     

    느티나무 도서관의 중2층 공부방에서는 도서관의 모든 층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구석구석까지 시선이 닿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출입의 유무는 관찰, 파악 가능하다. 게다가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기 상당히 어렵다. 한 자리에서 입체적인 조망이 은밀하게 가능한 공간은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이곳에 유일하다.5)

     


    3)그해 1월 초, 속 깊은 아내는 똥파리에게 여행을 제안한다. 그 동안 애 보느라 고생했다고. 그 여행 이후 생각을 굳혔다. 복직하지 않기로. 남자라서 애 본다고 이런 선물도 받고, 놀만 하지 않은가?

    4)참여회원이 전부 남자들로만 구성된 현재까지 유일한 세미나이다. 참여회원으로는 단미차자, 강가딘, 가마솥, 양세근, 청량리. 세미나 기간은 2010년 11월 ~ 2011년 1월.

    5)건축세미나 에세이 ‘7개의 키워드로 읽는 느티나무 도서관’(2011, 청량리) 중 ‘권력 속의 느티나무 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

    06

    2012년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한서. 아내가 다시 육아를 담당하고 똥파리는 비정규직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경력으로 정규직을 구할 수 있었으나 그는 월급이 적더라도 야근을 안 하는 조건의 비정규직을 택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자격증 시험공부와 자기 시간 확보. 거의 매달 다른 직장으로 출근하면서 그는 또 다른 일상을 경험했다. 일에 대한 욕심도 없고 무감각한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니 그의 일상도 건조해져 갔다. 그 무렵 예술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예술이란 무엇인지, 일탈이란 무엇인지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떤 면에서 그는 공부운이 좋은 편이다. 매번 자신의 상황을 곱씹어 보는 책을 만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저기 먹자골목을 지나면 바로 우리집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김씨네 횟집을 지나가던 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횟집 수족관의 농어와 눈이 맞았다. …(중략)…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유리안에 갇힌 농어의 신세가 나랑 비슷해 보인다. 저 수족관 안이 얼마나 지루할까? 김씨가 회칼을 들고 호시탐탐 노려보는 걸 알고 있을까? 내가 농어라면 저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6)

     


    6)용인시민신문 원고 ‘예술은 일상에서만 가능하다’(2012, 청량리) 중


     

     

    자격증 시험이 있는 9월까지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에서 살았다. 누가 볼 땐 제대로 공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공부가 싫었다. 억지로 하는 거였다. 유사한 패턴을 익히고 출제문제들을 예상하고, 학원 선생들은 닳고 닳은 목소리로 강의를 되풀이했다. 요즘 우리가 공부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시험을 위한 공부, 승진을 위한 공부, 자격증을 위한 공부. 이렇게 목적을 두고 하는 공부는 대개 재미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 혼자 하는 공부다. 책은 뭣보다 같이 읽어야 제 맛이 난다. 다행히 학원에 같이 다니는 후배가 있어서 그나마 재밌었다. 그해 11월, 그는 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했다.

    육아휴직 동안 부지런히 문탁에 드나들던 똥파리는 이즈음, 생업을 이유로 조금씩 발걸음을 줄이고 있었다. 핵가족 시대, 아내 아니면 남편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 와중에 그가 꾸준히 이어가는 공부의 끈은 악어떼 청소년 프로그램이었다. (계속)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H*2013/11/131126_529425ca01319.jpg|61885|jpg|01 왕양명.jpg|#2013/11/131126_529425d215ab5.jpg|100119|jpg|03 공부.jpg|#2013/11/131126_529425d4f071a.jpg|229046|jpg|03 스피노자.jpg|#2013/11/131126_529425dca68a5.jpg|138997|jpg|04 느티나무도서관.jpg|#2013/11/131126_529425dfa87cd.jpg|37399|jpg|04 자격증.jpg|#2013/11/131126_529425e474c85.jpg|99426|jpg|05 학원.jpg|#2013/11/131126_529425f746300.jpg|14198|jpg|02 에티카_스피노자.jpg|#@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덧글 작성하기 -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덧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