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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회]아이가 보여주는 변화들
    정상오 / 2013-10-01 11:55:31
  •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비가 몇 번 내리더니, 입에서는 김이 서린 입김이 나오고, 마을 뒷산 밤나무에서는 입을 벌린 밤송이들이 밤을 보여주고 있다. 짧은 팔에서 긴팔로 바뀌는 계절이다. 한철을 말린 참나무를 도끼질해서 장작으로 만들어 두고 있다. 시골 살림이라는 것이 때가 되어 한 번에 일을 하면 몸살이 나는 법이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한 번에 하지 않고 조금씩 미리 준비하고, 며칠에 걸쳐서 나누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구들방에 들어가는 장작을 쪼개는 일도 그렇고, 마당 정리도 그렇다. 반야네는 이제 2번째 가을로 접어들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반야야 하늘에 별이 많다. 몇 개나 있지?”

    “응 아빠 많이 있어. 9개 보다 많이 있어”

    “아빠가 보니까 13개보다 많다.”

    “응 아빠 맞아. 14개 보다 많다”

    “와 저기 봐라 반야 정말 많다. 13개 보다 10배, 100배, 1000배 많다”

    “응 아빠 정말 많다.”

    집에 놀러 오신 손님들을 마을주차장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아이와 나눈 이야기다. 반야는 어느새 훌쩍 자랐다. 많이 웃고 많이 뛰고 많이 이야기 한다.

     

                                        ▲맨발의 반야는 흙을 밟고 있다. 유치원에 다녀와서 신발을 벗더니 맨발로 놀고 있다.

     

    글자를 가르쳐 주기보다는...

     

    “아빠 시애가 나보고 그림 못 그린대”

    “그래 시애가 그랬어?”

    “응 시애가 그랬어.”

    “유치원에서 또 누가 못 그린다고 했어?”

    “응 창윤이도 그래”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말해?”

    “아니 안 그래”

    “그렇구나. 반야는 매일 매일 그림도 그리고 글자도 쓰고 연습하고 있잖아. 그래서 매일 조금씩 예뻐지고 있어”

    아이는 아빠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동그란 눈을 또렷하게 뜨고 아빠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반야야 시애랑 창윤이가 또 그렇게 이야기 하면 반야도 이렇게 이야기해. 난 매일 매일 연습한다. 그래서 매일 예뻐지고 있어”

    아이는 그제서야 입 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귀에 대고 비밀 말처럼 속삭여 주었다.

    “반야야 아빠도 어렸을 때는 매일 글자랑 그림을 그렸거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쓰는 거야. 반야도 매일 연습하잖아.”

     

    같은 유치원 반 안에서도 글자를 어느 정도 읽고 쓰는 아이도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다. 친한 친구들이 그림이 이상하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시무룩해졌었다.

    아내와 나는 반야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기보다는 많이 듣게 하고 아이가 많이 이야기하기를 바라고 있다. 잠자기 전 시간과 아침밥을 먹고 난 후에는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 주면서 ‘ㄱㄴㄷㄹ, 아야어여’ 같은 글자의 원리는 이야기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읽고 쓰는 것은 조금 더 미루고 있는데 같은 유치원 안에는 벌써 쓰고 읽는 아이가 있는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발도르프학교와 북유럽에서는 7세가 되어서야 글자를 쓰고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 부부도 아이가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천천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반야는 열심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자극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미국인인 애림이네 아빠가 놀러왔다. 애림이네 아빠가 읽어주는
                                           영어동화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이날 반야는 태곤 오빠랑 애림이랑 신나게 놀았다.

     

    아이가 아빠의 이름을 읽을 수 있다니

     

    포도밭에서 포도를 사고 카드결제를 하고 사인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반야에게 묻는다.

    “이게 무슨 글자야?”

    “정. 상. 오”

    또박 또박 큰소리로 아빠의 이름을 읽는다. 포도밭 아주머니는 놀라면서 “아니 벌써 한글을 읽어요?”

    아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반야가 읽을 수 있는 있는 글자들이 있다. 반야랑 친한 친구들의 이름과 유치원 이름, 아빠, 엄마의 이름 그리고 ‘지원’이라는 반야의 이름을 읽을 수 있다. 아이는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부터 단어를 익혀나가고 있다. 나도 기분이 좋다. 아이가 아빠의 이름을 읽을 수 있다니, 굉장한 일이다. 글자에 관심을 갖는 아이를 위해서 우리 집에 있는 글자들부터 시작해서 마을의 이모와 삼촌들 언니 오빠들, 그리고 꽃, 나무, 풀들의 이름을 알려주어야겠다. 식탁에는 ‘식탁’이라는 글자를 앵두나무에는 ‘앵두나무’를, 감나무에는 ‘감나무’라고 닭장에는 ‘닭장’이라고 명찰을 달아 놓아야겠다. 솔직히 아직은 아이가 좀 더 몸으로 느끼면서 사물을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 빠르게 배우고 있으니 우리 부부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반야는 요즘 아빠와 엄마의 일상을 존중해 준다. 아빠가 책을 읽거나 일을 하고 있으면 자기도 옆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블록을 쌓으면서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다. 엄마 아빠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집에 찾아온 친구들과 땀이 흠뻑 나도록 논다. 나이가 2살부터 7살까지 차이가 나는 동네 언니 오빠들 틈에 끼어서도 어떻게든 놀아 보려고 한다. 가끔은 아이가 언니 오빠들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시무룩할 때도 많지만 아이는 어울려 다니고 있다.

    “아빠, 언니들이 나랑 안 놀아줘”

    “그렇구나. 언니들이 안 놀아주는구나”

    “응 나랑 안 놀아. 자기들만 놀고”

    “그럼 반야가 언니들이랑 놀아 주면 되잖아”

    “그래도 자기들끼리만 만들고 그림 그려”

    지난주에는 또래 친구들이 마을에 놀러왔다. 그 때 아이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마을길을 몇 번이나 오가면서 물놀이를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동네를 뛰어다녔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또래가 많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으나 싫으나 반야는 동네 언니들 틈에 끼어서 놀고 있다. 그렇게 아이는 관계를 배워가고 있다.

     

                                 ▲친구랑 놀다가 다리에 멍이 들고, 턱을 부딪쳐서 멍이 들어도 안 아프다고 하는  반야는 추석맞이
                                예절 교육을 간다고 한복을 입고 선글래스를 쓰고 나섰다. “아빠 나 선글래스 하고 갈래”. “응, 반야”

     

    아이는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몸도 많이 자랐지만 주변과의 관계도 다양해지고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 유치원이 너무 좋다고 유치원에 매일 가고 싶다고 한다. 가을이 깊어지는 것처럼 아이의 몸도 마음도 가을하늘처럼 높고 파랗게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내도 나도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환하고 기분이 좋다. 아이에게 참 고맙다. 이번 가을도 아이 덕분에 우리 부부가 많이 웃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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