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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회]남자인 나도 엄마가, 아내가 될 수 있다
    정상오 / 2013-09-10 11:08:38
  • 마을에 이사 와서 두 번의 봄과 두 번의 여름을 맞이하고 이제 두 번째 가을로 들어왔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귀뚜라미, 메뚜기, 여치, 사마귀 같은 곤충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밤이 되고, 새벽이 가까워 오면 이 녀석들이 부르는 ‘찌르르르’ 소리에 잠이 깰 정도다. 지난 6월에 온 닭들은 이제 제법 닭다운 모습으로 자랐다. 꼬끼오 소리도 할 줄 알고, 말썽도 부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옆집 쌍둥이네 참외까지 모조리 먹어치운 것이다. 당분간은 닭장에 가두어 놓고 기르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배추와 무 모종을 심었기 때문이다. 참외야 몇 개먹은 것으로 끝 날 수 있지만 배추 모종을 모조리 먹어 치우면 그 때는 뒷감당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텃밭에도 홍당무와 배추 모종을 심었기 때문에 겨울이나 되어야 닭장을 열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닭들 참외 먹지마! 아이는 자기가 먹을 참외까지 모조리 
                                              먹어치우는  닭을 보며 한마디 한다. “아빠 닭들이 참외 먹었어? 이 녀석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마을 주차장에 들어선 유치원 차에서 반야가 내렸다. 아이가 내리자마자 선생님은 반야의 발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조금 긴장하는 눈빛으로 “어머 아버님 반야 발톱이 툭하고 깨져서요 이렇게 붕대를 감았어요. 그런데요 반야가 울지 않았어요” 아이는 엄지 발톱에 붕대를 감고 차에서 내렸다. “괜찮아요. 놀다보면 다치고 그러는 거죠. 샌달을 신켜서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침에 조금 더 살펴볼 것을 그랬어요.”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 샌달을 신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야가 어느새 훌쩍 커서 올 봄에 산 샌달 밖으로 엄지발가락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반야야 그 신발은 신지 말자. 반야 발이 커서 발가락이 밖으로 나오네”

    “이거 신을 거야”

    “그래 유치원 차가 기다리니까 신고 가자. 그래도 아빠는 그거 신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는 아빠의 말 보다는 자기의 마음이 우선인지 샌달을 신고 갔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는 샌달 밖으로 튀어나온 엄지 발가락에 붕대를 하고 왔다. 아이의 발에 감은 붕대를 보고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놀랐을 아이가 살펴지기도 했다.

    “반야야 아프지?”

    “아니 괜찮아”

    “많이 다쳤어?”

    “아니 조금 다쳤어”

    “어쩌다 그랬어?”

    “응 창윤이가 자전거를 밀면서 나랑 부딪쳤어, 시애는 넘어져서 다리에 피도 났어”

    “그랬구나 창윤이가 밀어서 반야는 발가락이 다치고 시애는 다리에 피가 났구나”

    “응 창윤가 밀었어”

    “창윤이가 밀었구나. 다음부터는 그 신발은 신지 말자. 반야가 많이 커서 발이 밖으로 나오니까 다치기 쉽다. 그지”

    “응 알았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봄하고 여름을 지나면서 훌쩍 자라나고 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고, 비를 맞으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나무들 같다. 우리 반야도 정말 많이 자랐다. 이제 어린이가 되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아빠는 기분이 좋다.

     

                                                          ▲아빠 모자 어때? 아이는 아빠 밀짚모자를 쓰고 자세를 잡았다. 
                                                   반야가 신은 샌달 밖으로 발가락이 나왔다. 그래도 아이는 그 신발이 좋단다.

     

    “아빠 내가 커서 아빠한테 샐러드 해줄게.”

    “고마워 반야”

    “토마토 넣고, 바질 넣고, 깻잎도 넣고 맛있게 해줄게. 아빠가 나한테도 많이 해주잖아. 엄마도 해줄거야.”

    “반야가 해주는 샐러드 맛있겠다.”

    “응 맛있어”

    우리가족은 지난여름 내내 샐러드를 먹었다. 텃밭에서 딴 토마토에, 보리지, 바질 같은 허브를 넣고 유자청을 뿌려서 먹었다. 맛있었다. 아이가 여름에 먹은 샐러드를 기억하면서 아빠와 엄마에게도 샐러드를 해준다고 한다.

    이럴 때 난 참 행복하다. 지금 아이가 이렇게 마음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기쁘다.

     

                                                 ▲엄마가 출근하고 아빠와 반야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반야야 얼른 먹자. 
                                     그래야 아빠도 출근하지 어서 먹어”, “아빠 자꾸 빨리 먹으라고 할거야? 내가 알아서 먹을거야!”

     

    아빠도 마음이 많이많이 자랐다.

     

    지난 5년의 세월 동안 아이는 참 많이 자랐다. 아빠도 마음이 많이많이 자랐다. 두 해전 여름에 아이가 나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아빠 아빠가 엄마 같아,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가 엄마, 엄마가 있을 때는 아빠가 아빠야” 아이가 들려준 이 말은 그날 이후로 나에게 아이를 돌보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 아이를 통해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었구나’를 알게 되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눈높이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몇 개월이 더 지나서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아내에게도 아빠가 될 수 있고, 엄마가 될 수 있고, 아내의 아내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많이 고맙다. 나는 남자.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이 ‘나’ 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아이를 통해서 내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을이 오면서 장에 가서 배추 모종을 사왔다. 여름에 주렁주렁 호박과 참외를 달고 있던 작은 밭을 갈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었다. 다 익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달려있는 참외는 따서 참외장아찌를 담그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참외는 더 이상 익지 않으니 장아찌를 해 먹으라고 어른들이 귀뜸을 해주셨다. 장아찌를 담그면서 참외 속은 닭들에게 주었다. 이곳 마을에 살면서 나는 닭장 주인도 되고, 텃밭지기 농부도 된다. 그나저나 배추 잎에 벌레가 엄청나게 많이 낀다고 하는데 배추농사는 잘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 해보면 요령이 생길 것이다. 아이에게서 배웠던 것처럼 바람과 햇빛과 땅과 물, 벌레들이 알려줄 것이다.

    “반야 아빠, 이렇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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