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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회]‘문탁 네트워크’의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방법-02
    진성일 / 2013-07-16 0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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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중반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서구,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도시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도시인구의 증가에 따라 주택 수요는 늘어났지만, 주택 공급의 증가는 미미했다. 이로 인해 도시 빈민과 부랑자들이 늘어났고, 도시의 곳곳에서 슬럼이 만들어졌다. 열악한 상황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주거가 급조되었고 하수와 오물, 환기 등은 제대로 처리되지 못 했다. 1830년 유럽의 불어 닥친 콜레라 광풍은 그러한 열악한 주거환경,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상태를 콜레라의 발생지로 간주하게 되었다. ‘위생’이라는 말은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당시 주택과 위생에 관련된 정책은 비위생적인 낡은 집의 철거와 파괴에 집중하였고, 오히려 주거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주거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방안, 즉 새로운 주거환경 모델 개발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이야기 되었다. 여기에 두 가지 접근 방법에 따른 모델들이 제시된다. 하나는 부르주아지들의 박애주의 전략에 의한 모델이며, 다른 하나는 푸리에 사상에 근거한 코뮨주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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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지들의 노동자 주거모델은 위생에 대해, 어린이의 보호에 관련해, 빈곤을 대상으로 한 계급적 전략이었다. 이는 가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게끔 해야 했다. 거리에서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해야 했으며, 가정은 자기의 집을 소유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해야 했다. 부르주아지들에게 노동자들은 감시의 대상이었다. 이는 대중들을 정치에서 분리하여 통합하고 지배하는 또 다른 방법 중의 하나였다. 사회적 공간, 공공의 영역은 최소한으로 축소되었고, 집들은 가로에 각각 면하게 되어 있어 서로가 마주치는 일을 없도록 했다. 지금의 아파트도 마찬가지여서 형태만 집합주거일 뿐, 사회적 공간이 거세되어 주거공간은 가족의 공간으로 고립되어 간다.

    그와는 반대로 코뮨주의자들은 공동성과 공동적인 삶의 방식을 담을 수 있는 주거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공동육아와 교육, 공동으로 사용하는 식당과 세탁실 등은 당시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조건으로선 자연스러운 삶의 요구조건들이었다. 여러 계획안들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 실현되지 못 했고, 사업가 고댕이 지은 파밀리스테르가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족단위의 주거공간은 집합주택의 형태로 사적인 공간 확보를 하고, 각 주거를 연결하는 회랑과 가운데 중정의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코뮨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후 파밀리스테르가 성공적인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끊임없는 부르주아지들의 경계와 계급전략으로 인해 더 이상 지어지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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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밀리스테르와 같은 코뮨주의적 집합주거는 현재 우리의 삶과는 다른 종류의 삶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코뮨적 삶의 방식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주거공간은 코뮨주의자들의 모델이기 보다는 부르주아지들이 제안한 노동자주택단지와 형태적으로는 더 유사해 보인다. 오히려 더 나아가 공용공간을 많이 잡아먹는 편복도식 아파트에서 계단실 아파트로 넘어오면서 복도와 계단실은 통과동선의 의미마저도 상실해 가고 있다. 자동차로 이동하고, 엘리베이터로 각자의 집에 접근하면 우린 거리에서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

     

     

    이러한 때에 문탁의 공간에서 제3의(혹은 제4,5의) 공유지로의 확장은 분명 파밀리스테르의 중정처럼 사회적 공간, 공공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를 통해 공동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개별적인 주거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문탁공간(중정)으로의 집중이 오히려 서로의 주거 공간을 더 섬처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각자의 주거공간은 더 견고한 사적공간이 되고 가족생활의 단단한 토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앞서 이야기 한 공간의 재사용 문제를 다시 짚어 보자. 주거 공간이 남는 시간에 회원들이 세미나를 하고, 주방에서 반찬을 만드는 것으로 재사용한다. 그러면 각자의 주거 공간은 사적공간이지만 때로는 공공의 공간이 되고, 이것은 보이지 않는 회랑을 형성한다. 서로의 집들이 가로를 통해 직접 연결되진 않지만, 문탁 회원들이 그 회랑을 통해 각자의 집을 이곳저곳을 연결한다. 우리는 이것을 한 번 실험해 보려고 한다. 희망하는 회원들은 집이 비어있는 시간대와 사용가능한 공간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면 갈 수 있는 세미나나 다른 활동들을 서로 엮어 보는 것이다.

    문탁의 첫 해 축제의 주제는 ‘가족을 흔들어라’였다. ‘가족의 종말’이라는 책도 보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 관한 영화도 보고 토론도 했었다. 하지만 정작 가족의 완벽한 영토가 되고 있는 주거 공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못 했다. 부르주아지들이 그들의 가족주의 계급전략을 주거 공간을 통해 이뤄내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삶과 무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가족주의적 욕망의 배치’가 바로 주거 공간의 배치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이뤄지고 있는 주거 공간의 배치’가 낯설고 어색하게 될 때야 비로소 가족주의적 욕망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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