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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회]마귀할배 반야아빠
    정상오 / 2013-07-15 08:05:54
  • 요즘같이 비가 자주 오는 계절, 단독주택에 어울리는 4계절용 필수품들이 있다. 특히 반야네 같이 텃밭도 있고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고, 마을 공동주차장에 차를 두고 집까지 100m는 더 걸어와야 하는 경우에는 꼭 있어야 할 것들이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흙털개 발판, 텃밭에 물주는 호스, 배추, 무, 허브와 같은 씨앗, 물 조루, 텃밭 관리하는 책, 겨울에 사용하는 눈 삽, 마당 쓰는 빗자루, 아내와 아이가 비올 때 신는 장화와 우비, 겨울에 발가락이 든든한 까만 겨울 털신과 덧버선, 이런 물건들이다. 이런 것 외에도 텃밭의 벌레를 퇴치하는 친환경 농약 같은 것들까지 작지만 유용한 것이 정말 많다.

    난 요즘 이런 물건들을 내 노트에 꼬박 꼬박 적어 둔다. 단독주택에 사는 지인들의 집을 찾아갈 때 선물로 주기 위해서다. 집들이 선물로 들고 가는 화장지보다 100배는 더 유용하고 잘 쓰이는 물건들이다.

     

                                                         ▲아빠 수박씨앗을 먹었어! 더운 여름날은 수박을 먹으면서
                                            지내는 일이 피서 중에 하나다. 반야는 수박씨앗을 먹지 않는데 오늘은 먹었다.

     

    잔소리쟁이 아빠

     

    요즘 반야아빠는 점점 마귀할멈 아닌 마귀할배가 되어가고 있다. 5살이 넘은 아이와의 대화 속에서 아빠는 끊임없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반야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는 더 자주, 더 많이 아이를 보채고 있다.

    “반야 일어나야지... 조금 더 잘래? 그럼 아빠가 조금 있다가 깨워줄게. 그 때 일어나야 해”

    “반야 세수해야지. 코 묻었다. 눈곱도 좀 떼어야지 그게 뭐냐! 거울 봐봐”

    “시간 없어. 유치원 차가 올 때 다 되었어. 얼른 나와, 가방 가져와야지”

    “아빠도 회의하러 서울 가야 해! 얼른 준비하자”

    “밥 먹어야지, 밥 안 먹으면 키가 안 커! 너 엄마 학교 다니려면 언니들처럼 키가 커야지... 얼른 밥 먹자”

    “자꾸 밥 안 먹으면 유치원 선생님한테 다 이야기한다.”

    “너 집에서 밥 안 먹고 유치원에서 간식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얼른 밥 먹자”

    “아빠도 속상해, 정말”

    “반야야, 네가 버린 건 주워서 분리수거해야지”

    “반야야, 여기에 그냥 버리면 어떡해! 저쪽으로 치워라”

    “아빠도 청소하는 거 힘들다. 아빠 좀 도와줘”

    “너 이럴 거면 내일부터는 엄마랑 유치원에 가!”

     

    ▲맛있는 감자전을 만들어요. 옆집 쌍둥이 언니랑 감자전을 만들고 있는데 오늘 표정은 왠지 힘이 조금 들어가 있다. 이제 반야도 살림에 제법 참여하고 있다. 청소, 음식 만들기, 텃밭에 풀 뽑기, 닭들에게 밥 주기까지 아이는 자기 몫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난 마귀할멈이 다 되었다. 잔소리를 많이 한다. 반야가 제시간에 유치원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해주면서 아빠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아이에게 재촉할 때가 많아진다. 그리고 아이가 준비를 하지 않으면 마귀할멈처럼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린다.

    아이는 이런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빠가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내일부터는 아빠랑 안 놀아!”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아빠한테 맛있는 거 주지 말라고 할 거야”

    “아빠는 잘 모르잖아,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마!”

    아이도 나름대로 아빠에게 경고를 한다. 솔직히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잔소리 듣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면서 정작 우리 아이에게는 잔소리 마왕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는 것과 필요한 규칙을 알려주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면서도 아빠는 점점 잔소리쟁이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가 아빠에게 자기의 기분을 이야기할 때는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는 것을 경험으로 배워놓고도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잔소리쟁이가 되어가는 나를 보면서 아이에게 미안함도 많아진다.

     

    ▲가물치 방류 사건. 마을 연못에 가물치 두 마리를 넣어 두었다가 다시 잡느라고 난리가 났다. 연못에 살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이 가물치에게 모두 잡혀먹기 전에 어복을 입고 가물치의 행방을 찾고 있다. 결국 가물치는 잡히지 않았지만 한 마리는 죽어서 떠올랐고 한 마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아빠, 자꾸 나한테 짜증낼 거야?”

     

    후덥지근한 오늘 아침 아이가 옷을 3개나 입고 간다고 한다.

    “아빠는 반야가 옷을 3개나 입으면 더우니까 시원하게 입으면 좋겠다. 겨울에는 추우니까 여러 개 입어도 되지만 지금은 여름이잖아.”

    그래도 반야는 고집을 피운다. 자기는 예쁘게 입는다고 옷을 골라서 입었는데 아빠가 인정하지 않으니, 입고 가고는 싶고, 아빠와 실랑이는 하기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아빠, 자꾸 나한테 짜증낼 거야?”

    “반야야 아빠가 짜증내는 게 아니잖아”

    “아빠, 그게 짜증내는 거지”

    사실 아이 말이 맞다. 아빠는 짜증이 났다. 아이가 옷 입은 모습을 보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흉볼 것을 먼저 걱정했다. 아이의 마음은 살펴보지 않았다. 반야가 왜 그렇게 입으려고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시간이 없으니까 어르고 달랠 생각만 했다. 정해놓은 기준으로 아빠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서 아이에게는 짜증을 내고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아빠의 수준이 아직 이만큼이다. 멀었다. 갈 길이 멀다. 제법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 떼를 쓰고 우기는 나를 만날 때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오기는 많이 왔다.

     

    유치원 차를 타러 가는 길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반야야 아빠가 짜증내서 미안해, 옷이 더우면 유치원에서 한 개는 벗어도 돼, 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벗어. 그리고 아빠가 머리 빗어 줄 때 아프게 해서 미안해”

    옷 입는 것과 아이의 머리를 빗어 주는 것은 별개인데 아빠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운다는 생각에 머리를 세게 빗어 주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아이는 쿨하다.

    “응, 여기 귀가 아팠어, 나도 아빠한테 짜증내서 미안해”

    자기가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게 하고 머리도 아프게 빗어 주었으니 반야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행동에 마음이 조금 아팠을 것 같다. 결국 아이는 옷을 세 개나 입고 유치원에 갔다.

     

    아이와 실랑이를 할 때 어디까지 아빠가 수용하고 반응하고 규제를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다음에도 이런 순간이 오면 아이와 부딪치지 말고 이렇게 해야지 하면서 노트에 적어본다.

    1. 아이의 고집은 지금 이 순간일 뿐, 아이의 행동을 과거와 미래로 연결시켜서 확대 해석하지 않기.

    2. 아빠의 체면을 위해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아이의 의도가 무엇인지 먼저 귀담아 듣고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3. 아빠가 미안한 일을 했으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사과하기.

    4. 뒤끝 없기. 아이는 쿨하고 뒤끝이 없어서 까마득히 잊었는데 아빠는 저녁까지 뒤끝을 가지고 간다. 나도 쿨해지기.

    5. 솔직해지기. 돌려 말하지 않고 아빠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솔직히 이야기하기.

    6. 아이를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이해하도록 노력하기.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몇 년이 지났어도 변함없는 원리가 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일은 자기를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와 실랑이를 할 때,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난 내 마음도 잘 모를 때, 아이의 마음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나를 만나게 된다.

    육아를 시작한 첫 날도 그렇고 아이가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부모가 되어간다는 것은 아이를 통해서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자 샐러드. 반야네 텃밭에서 딴 토마토, 바질, 보리지, 아니스, 상추를 씻어서 먹기 좋게 썰어서 그릇에 담고 유자청과 겨자를 넣어서 유자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있다. 이 여름에 유자샐러드는 상큼하기도 하지만 보기도 좋다.
     

    더운 여름날이다. 날씨가 습하고 비도 자주 온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손을 흔들고, 회사 일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갈 때면 아빠는 마음이 설렌다. 날씨가 더웠는데 오늘 하루 잘 지냈는지, 친구들과 조잘거리면서 잘 놀았는지, 선생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고 설렌다. 유치원에서 손을 잡고 나오면서 이렇게 물어본다.

    “반야, 오늘 유치원에서 김치 맛있게 먹은 친구는 누구야?”

    “응 반야”

    “오늘 더웠지?”

    “유치원에서 에어컨 두 개 틀었어, 안 더웠어”

    “집에 가서 맛있는 간식 먹자. 뭐 먹을까?”

    “응 맛있는 거. 아빠, 토마토 따먹자. 맛있겠다. 어제 보니까 빨갛게 익었어.”

    “그래, 맛있겠다.”

    “아빠, 엄마 것도 남겨두자”

    “그래, 엄마 것도 남겨두자”

    집에 돌아와서 요플레에 토마토를 숭숭 썰어 넣어 주었다. 아이는 입안 한가득 토마토를 넣고 입주위에 하얀 요플레를 잔뜩 묻히고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에 감사하고 고맙다.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는데 아빠가 괜한 고집을 많이 부린다. 고마워요 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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