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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회]셀프 도배
    진성일 / 2013-06-04 06:25:11
  • 결혼 하고 집을 네 번 옮겼습니다. 처음 신혼집은 풍덕천동에 있는 초입마을 아파트. 두 번째는 상갈동에 있는 금화마을. 그리고 다시 풍덕천동에 있는 초입마을 아파트. 그리고 지금은 다시 상갈동에 있는 금화마을. 어쩌다 보니 초입마을과 금화마을 사이를 2년에 한 번 꼴로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처음 신혼집에 들어갈 때부터 지금까지 벽지나 장판 상태가 그럭저럭 봐 줄만하고 우리 둘이 그런 것에 별로 까다롭게 반응하는 편이 아니라서 벽지나 장판을 한 번도 새 것으로 갈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계속 전셋집에 있어서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금화마을에 있는 우리집에 있으면서는 오히려 겸서에게 벽에 낙서를 권장(?)했던 탓에 현재 깨끗하게 남아 있는 벽이 하나도 없습니다. 겸서의 손이 닿는 높이에는 어디에나 낙서가 되어 있고, 색깔도 여러 가지, 겸서 따라서 윗층 누나도 몇 작품을 그려 놓았습니다. 문제는 오래 살 거라고 생각했던 아파트를 어쩌다 보니 팔아야 할 상황이 되자 그 낙서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밤 11시부터 작업 시작

     

    우리가 남의 집에 가더라도, 위치도 좋고 전망도 좋더라도 갖가지 형형색색의 낙서들로 가득 찬 벽들을 보면 왠지 심란해 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집을 부동산에 내 놓았을 때, 부동산 아주머니도 당장 벽지부터 해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신혼집에서도 안했던 도배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며칠 새 계속 어떻게, 어디까지 도배를 해야 할 지 고민 중입니다.

     

    얼마 전 집으로 들어가기 전 현관문에 어떤 택배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이게 뭔가 물어봤더니 도배지랍니다. 알고 보니 누구를 통해서 알게 된 ‘셀프 도배’를 알게 되어 벽지를 몇 장 구입했더군요. 셀프 도배라는 것이 별거 아닌데 아이디어가 꽤 좋습니다. 롤로 되어 있어 바닥에 길이를 재서 자르고 풀을 물에 풀어서 밀풀을 만들어야 하는 과정을 대신 해서, 벽 길이만 재서 몇 장인지 주문만 하면 재단하고 풀칠까지 해서 밀봉한 상태로 집에 배달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한 장씩 뽑아서 벽에 바르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우리들의 작업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후입니다.

     

    어느 날 밤 11시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이 포인트라고 바른 꽃무늬 벽지 외에 겸서의 작품이 가득한 벽만 다시 도배하기로 했습니다. 거실과 주방 쪽인데, 연두색의 벽지를 아내가 골랐습니다. 그리고 안방에는 조금 분위기를 달리해서 분홍색의 벽지를 골랐습니다. 첫 장을 바를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리 둘은 조금 우왕좌왕 했습니다. 여기부터 붙여야 할지, 저곳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맨 위 몰딩 부분과 바닥 걸레받이 부분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또 읽었습니다. 드디어 첫 장이 벽에 붙었습니다. 오, 꽤 그럴 듯합니다. 색깔도 상당히 맘에 들었습니다. 조금씩 마무리 칼질이 과감해지기 시작합니다. 온장에서 남은 벽지들을 이용해 구석구석 알뜰히 붙여 나갔습니다. 한 쪽 벽이 완성되자 흡족한 눈빛으로 한 동안 감상했습니다.

     

     
     
     

    고맙다, 아내의 투혼

     

    시간이 밤 12시를 넘어서자 신데렐라(!)인 아내는 졸리기 시작한 지, 거실 벽체까지 얼른 마무리하자고 재촉합니다. 소파를 들어내고 붙여나가다 보니 이번에는 책장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거기엔 빈 곳 없이 겸서와 한서 책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다소 과감한 아내는 통째로 옮겨 보자고 합니다. 물론 택도 없습니다. 아이들 책은 대부분 하드커버라 엄청 무겁습니다. 몇 번 이리저리 용을 쓰다가 결국 책을 빼내기 시작합니다. 몇 칸 빼내고 다시 움직여 봅니다. 아얍~~~!! 아내가 책장을 옮기다 중지 발가락을 찧었습니다. 상당히 깊게 패였습니다. 괜찮다며 다시 일을 재촉하는 아내가 과감함을 넘어 이제는 무식해 보입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이라 궁시렁거리면서 몇 마디 핀잔을 줬습니다.

     

    예전에 일하다가 다치면 아버지는 엄청 혼을 내셨습니다. 그건 일을 못 하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거라면서 부주의를 늘 경계하셨습니다. 우쭈쭈쭈, 다친 곳을 호오 불어주기 보다는 혼을 내셨던 아버지가 그때마다 어찌나 서운했던지. 하지만 오늘 아내가 다친 것을 보니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혼을 내지 않으면 더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려 하셨던 거죠. 일을 잘 못하는 거야 배우면 되지만 부주의한 거는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크게 다치게 됩니다. 하지만 아내의 발가락에 붙은 반창고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는 걸 보니 아버지처럼 혼내지는 못했습니다. 이구,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면서도 얼른 다시 일을 시작하자는 아내 앞에서 조용히 도배지를 다시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붙여나가다 보니 어느새 거실도 완성되었습니다. 풀에 젖은 새로 붙인 도배지 안쪽에 겸서의 낙서가 그대로 드러나 보입니다. 이거 한 장씩 더 붙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가, 일단 다 마르고 나서도 보이면 그때 다시 한 장씩 더 붙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물에 젖은 종이는 잘 비치지만, 마르고 나면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실과 주방 쪽의 도배를 마치고 오늘을 일단 마무리했습니다. 한 번 해 보니 도배가 어렵지만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와중에 벽지를 자르고 풀칠하고 한 장씩 붙여나가는 것은 도배의 신이라도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고맙게도 이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풀칠까지 해서 잘라주고 택배까지 보내주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도배를 안 하다가 팔기 위해서 새로 도배를 했다는 게 왠지 씁쓸합니다. 깔끔한 연두색의 벽지가 바꿔 놓은 집안 분위기를 감상하면서 진즉에 할 걸, 후회가 됩니다. 셀프 도배의 아이디어를 준 아내, 발가락을 다치면서 투혼(?)을 발휘한 아내가 고마웠습니다. 아침에 겸서가 깜짝 놀랄 걸 생각하니 더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니, 새로 바른 벽지에 몰래 낙서를 할까 봐 덜컥 겁이 납니다. 어쨌든 결혼 7년 만에 벽지를 처음으로 바꿨습니다. 아내가 맘에 들어 합니다. 우리집도 새 옷으로 갈아입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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