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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회]필름이 끊긴다는 건
    조윤주, 김우 / 2013-05-21 05:24:27
  • 뭐 술 마시러 가는구만

     

    구 자치행정과 마을공동체팀에서 주관하는 1박 2일 민·관 합동 워크숍에 다녀왔다. 작년엔 수안보에서 동 주민센터 공무원, 구청 공무원들과 함께했다. 올해는 속초에서 주민자치위원들과 같이했다.

    “엄마, 1박 2일 워크숍 다녀올게.”

    떠나기 전 인사했더니

    “뭐 술 마시러 가는구만.”

    10살 둘째가 대꾸했다.

    사실 종일 회의만 하고 강의만 듣는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술자리도 있는 1박을 한다는 것이 가점이 된 건 물론이다.

     

    주민자치위는 새마을협의회, 바르게살기협의회, 새마을부녀자회,… 등 직능단체 대표들로 구성되어 내가 살아온 삶과는 좀 거리감이 느껴지고 낯섦이 느껴지는 단위였다. 그냥 마을과 지역을 위해 마음을 내며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힘을 합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과 마음으로 참석했다. 그럼에도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라 조심스러움이 쉬 가시진 않았다.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고, 오락 시간도 나누었다. 밤에 601호와 602호에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한곳에 모이자는 제안이 있어 602호 방과 거실로 나누어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 일착으로 도착했던 나는 방에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를 제외하곤 모두 공무원과 주민자치위원들이었다.

    “저쪽이 젊은이들 자리인데 거기로 가고 싶지 않으세요?”

    물어서

    “아닙니다.”

    답하고 꿋꿋하게 마셨다. 주는 잔 다 받아 마시고 부딪치는 잔 마다치 않았다. 거리감을 좁히도록 노력하고 싶었다. 누군가 싸 온 양주가 두어 병 풀어졌다. 맥주에 섞어 주는데 맥주 대비 양주의 농도가 너무 진했다. 그러니 양주를 맥주잔으로 마시는 셈이었다.

    ‘이 잔만 마시곤 자러 가야겠다.’ 혼자 생각한 것까지만 생각나고 눈을 떠보니 방이었다. 아침에 첫 강의를 들으러 가니 건네지는 인사는 모두가 “괜찮아요?”였다.

     

     
                                                                               ▲우연히 꾸려진 601호 멤버들

     

    남에게 나를 묻다

     

    물어물어 기억을 취합한 결과. 자러 가려고 일어났었나 보다. 배정받은 숙소엔 이미 다른 두 사람이 푹 잠들어있을 시간이라 어쩌지 하는 미안함과 망설임이 있었나 보다. 마침 문자를 확인했나 보다. 602호 거실 술자리에서 일어났던 이들이 어찌어찌 601호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는 정보. 601호 벨을 누르면서부터 긴장감이 풀어졌나 보다. 들어가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옆방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쪄요~”

    이러곤 내내 귀여운 척하며, 잔을 부딪쳐 건배를 수도 없이 부르며, 많이도 마셨다고 한다. 안주로 누군가 끓여준 라면도 대접으로 먹고 또 먹었다고 한다.

     

                                                                                          ▲화진포 바닷가에서

     

    그저 많이 웃고 많이 마시고 많이 말하는 오버 정도가 필름 끊긴 때 모습이라 나중에 내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면 “정말?”하고 의아해하기 마련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다. 결혼하고 첫 아이 갖기 전 부산 영화제에 갔을 때다. 퀴어 영화제 관련 친구들과 같이 가서 게이인 친구들과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다. 둘째 날 나와 한 친구의 술자리에 누군가 와서 앉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긴 한데 나에겐 통성명도 안 하고 앉아서 다른 친구와 얘기도 하고 안주도 집어 먹고 했다.

    “처음 뵙는데 인사라도 하죠. 저는 김우라고 해요.”

    다정 따듯하게 건넨 인사에 상대방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나야 나. 삼식이. 어제 같이 블루스도 췄잖아~”

    뜨아~~ 놀란 건 상대인지 나인지….

     

    이런 적도 있다. 신촌에서 일행이 모두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누가 말했다.

    “주위에 내가 아는 친구가 살아. 신혼인데 옥탑방에 살지. 거기 가서 마시자~”

    평상시 같으면 신중하게 반대했을 나였지만 이미 취해 오버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래. 가자, 가자!”

    신혼집 옥탑방 습격사건. 새벽녘에 처음 보는 남의 집에 가서는 술 사와라, 안주 차려내라 탁자를 두들겨 가며 재촉했다. 그리고 웃고 떠들고 또 웃고.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난 아침의 인사말.

    “간밤엔 실례 많았어요. 저희가 너무 무례했죠.”

    몇 시간 전과는 판이한 반듯 모드로 돌아왔는데 그 신혼부부에겐 충격인 듯했다. 둘 다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새벽에 말도 놓고 친근하게 놀았던 시간은 내게 끊긴 기억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선배들과 진도 홍주 됫병을 마셨는데 다음날 뒤끝도 없지만 기억까지 깨끗했던 것처럼.

    “어? 형모형은 갔어요?”

    “그래. 갈 때 니가 잘 가라는 인사도 했는데.”

    “그랬어요?”

    남 얘기하듯 나를 물을 때가 있다. 때때로 라기보다 종종.

     

                                                                                       ▲화진포 콘도길에서

     

    뭐 술 많이 마시구 왔다는 얘기구만

     

    “엄마 워크숍에서 최선을 다하고 왔어~”

    하루 지나 만난 아이들에게 인사했더니

    “뭐 술 많이 마시구 왔다는 얘기구만.”

    둘째가 활짝 웃으면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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