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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회]깊은 발자국이 바라보는 것
    진성일 / 2013-05-21 04:21:56
  • 가슴으로 사유하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대문에서 잠시 흑백사진을 배운 적이 있었다. 사진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별히 할 게 없어서 시작한 사진이었다. 그러나 다시 직장을 다닐 때쯤, 이젠 틈만 나면 셔터를 눌러대게 됐다. 하지만 프레임에 들어오는 풍경을 담는 게 좋았던 것이지 프레임을 통해 어떤 풍경을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즈음 《우연히…풍경》을 읽게 되었다. 야근이 많던 직장생활 때문에 책은 출퇴근길에 틈틈이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늘 졸린 눈으로 오고가던 그 출퇴근길에서도 책 속에 있는 풍경에, 그 안에 있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도 있구나, 사진 한 장으로 이렇게 깊은 생각을 풀어낼 수 있구나’ 싶었다. 지은이 이지누는 사진가로 시작했지만, 2001년에《디새집》이라는 계간지를 창간할 정도로 글에 대한 욕심도 상당하다. 그래서인가? 사진과 글, 모두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독특한 산문집이었다.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이지누 지음, 샘터, 2004)

     

    《우연히…풍경》은 변산의 바다와 갯벌을 돌아다니면서 쓴 책이다. 그가 변산을 돌아다닌 이유는 어렵사리 만든《디새집》이라는 잡지를 그만둔 여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산에 오르거나 소주를 마시거나. 처음에는 그도 산과 계곡을 묵묵히 걸어 다녔다. “순례자처럼 천둥치며 비 내리는 날도 마다하지 않고” 걸었으며 그 “빗물을 핑계 삼아 눈물을 흘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산과 계곡은 “상처를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에는 그들은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무엇”이었던 탓에 자신의 힘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상처가 있으면 아무래도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상처로부터 또 다시 나를 돌아보게도 된다. 아예 상처가 없는 사람이거나 나보다 훨씬 큰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는 나를 비춰보기 힘들어진다.

     

    그는 발길을 돌려 “낡거나 오래되어 침울한 풍경”들 속으로 들어간다. “낡고 초라하여 낮고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변산의 풍경과 그 때 읽었던 글은 그에게 “곤궁한 시절에 가장 으뜸가는 벗이었으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일깨워 준 고맙고 귀한 벗들”이 되었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 중의 하나는 그 상처를 확대 혹은 축소 해석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는 것은 아무래도 더 크거나 더 작게 보기 쉽다. 제대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사유의 힘이다. 나를, 나에게 있는 것을 제대로 보는 힘, 그것이 사유의 힘이다. 그 힘이 어느 정도 생길 때 비로소 남이 보인다. 내 문제가 저 산보다 더 크다고 생각되면 다른 문제가 들어올 틈이 없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먼저 넉넉하여야 하는 것을요. 그리하여 아주 섬세하게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빠지기 쉬운 또 다른 잘못은 사유를 머리의 문제, 논리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슴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사유는 메마르기 쉽다. 신영복 선생도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가슴에 이르지 못한) 메마른 (머리의) 사유는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 예리한 상처를 낼 뿐이다. 이 책에서 이지누가 갖고 있는 사유의 힘은 가슴으로부터 나온다. “무릎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어 쭈그리고 앉아야만” 보이는 작고 낡은 변산의 풍경들에 대한 애정으로 그의 사유는 채워진다. 그는 “스스로가 가진 깊이와 넓이만큼 세상과 사람을 대하고 사물과 풍경을 만나는 것은 길 떠나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상처를 넉넉히 받아 준 변산의 풍경, 그것을 통해 그는 다시 줄포나 곰소포구에 있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어 본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저 스스로가 겪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의 사유를 통해서 보는 풍경과 사람들은 그의 사진과 글 속에서 더해지지도 덜해지지도 않는다. 외부와 공감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것, 그게 더 어려운 법이다. 상처가 있을 때 상황을 조리 있게 말해주는 것도 좋지만, 가만히 옆에 앉아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같은 풍경을 본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불편한 질문 던지기

     

    그의 사진을 보면 그가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랫동안 느리게 서 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염전의 다 쓰러져가는 낡은 소금창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부서진 문짝, 텅 빈 갯벌의 작은 조개들, 용처를 알 수 없는 오래된 말뚝들, 갯벌에 쓰러져 있는 망가진 배들. 그런 풍경들을 담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자마자, 사진은 무엇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드니 로슈의 말처럼 그 사물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소위 눈살 찌푸리게 하는 그 모습들을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을까. “길 가다 짐짓 마음에 드는 풍경 만나면 그것을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스스로가 자신을 보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그가 풍경을 (찍은 사진을) 통해서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그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이유’일까? 그는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사진기가 아니라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의 빈곤이 사진의 빈곤, 빈곤한 이미지의 범람을 낳는 것이죠. 사진은 사진기가 찍는 게 아니라 마음이, 정신이 찍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백이 많은 그의 사진들은 그 느림의 밀도를 더욱 진하게 한다.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니라 한참을 들여다보고, 볼 때마다 새롭게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얻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는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오줌이라는 것과 똥이라는 것만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조차 스스로의 힘으로 토해내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나를 찾는 일, 나를 버리는 일, 그 모두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하는 일이다. 변소에 앉아 스스로 용을 쓰듯 그렇게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삶이 깊어 보이는 것은 그 발자국 때문이다.

     

    그의 글이 문득문득 불편해지는 것은 답을 얻지 못했음이 아니라 질문조차 던지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스무 살 이후 살면서 제대로 된 물음을 던져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발자국은 바람에 쓸려 그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가 길 위에서 스스로와 만난 것처럼 불편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불편한 질문들은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다시 사유의 힘으로 나아간다. 그의 말처럼 “상처도 때로는 아름다운 꽃이 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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