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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회]바쁘다 바빠! 아버지 칠순 잔치
    진성일 / 2013-05-06 03:08:36
  • 시간을 보니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혹시나 집에 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이러다간 아내의 친구 집에 못 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아이들 옷만 아니라 우리들 옷차림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시간도 두 배로 걸리고 신경도 예민해져 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늘 그렇듯이 자신들의 요구조건만을 되풀이하거나, 울면서 안아달라고 찡찡거렸다. 아내는 동네 엄마친구들에게 빌린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옷은 많아 보여도 이렇게 챙겨서 입어야 할 때 입을 건 별로 없었다. 빌린 옷이라 그런지 몸에 안 붙어 보였다. 사실은 치마 원피스여서 그랬을 것이다. 아내도 이선희처럼 치마를 거의 안 입었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 치마 원피스가 몸에 붙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자꾸 보다보니 스스로 봐 줄만은 한지, “흠.........”이라는 다소 애매한 감탄사를 흘려보내기도 했다.

     

                                       ▲책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한서. 하지만 그게 네모인지 세모인지 동그라민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한서는 보는 것보다는 책장 넘기는 걸 더 좋아합니다. 

     

    보석함을 찾아라

     

    그에 비해 나는 이미 청바지에 와이셔츠로, 너무 평범하고 무난하게 정해버렸다. 넥타이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파란색으로 하나 골라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니, 0.5초만에 대답이 돌아왔다. “구려...” 음, 그럼 다른 걸로 할까?, 라고 시작된 것이 어느새 아내와 마찬가지로 이옷저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고 있었다. 아이 둘은 거실에서 가만히 노닥거리는데, 아빠와 엄마는 작은 방에서 안방으로, 다시 베란다 빨래줄로 정신없이 왔다갔다 한다.

     

    오늘 드레스코드의 정점은 악세사리. 수지에서 신갈로 이사 온 뒤 한 번도 팔에 걸친 적이 없는 시계를 찾았다. 겸서 낳고 난 후에는 손가락에 끼워 본 적이 없는 결혼반지를 찾았다. 물론 한 눈에 찾을 수는 없었다. 이사 오기 전에 넣어뒀던 곳에도 없고, 통장 모아 둔 곳에도 없다. 어디로 갔지? 그때 아내가 놀란 듯 쳐다봤다.

    “아, 맞다. 보석함”

    우리집에 제대로 된 보석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나름 반지와 목걸이가 들어있으니 보석함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가는 팔목이라 늘 헐렁거렸지만 두꺼운 가죽으로 된 시계줄이 맘에 들었다. 어라? 언제부터 멈춰 있었을까, 오전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는 10시 20분에서 시계는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가는 길에 건전지를 갈아 끼울 시간도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그냥 팔목 위에 두기로 했다. 폼은 나니까. 알게 모르게 살이 오른 손가락에 겨우 반지도 하나 끼워 넣었다. 이로써 외출준비 끝.

     

    아내 팔목에도 오랜만에 보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가끔 결혼식장에 차고 가던 거였는데. 그리고 한서가 입에 물고, 갖고 놀기 좋은 진주반지도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나랑 생각하는 게 비슷하네. 시계를 슬쩍 보니 10시 반이다. 11시 넘은 지가 언젠데....

    뭐야? 아내 시계도 멈춰 있었다. “뭐, 어때. 폼 나잖아?” 오늘 우리 부부의 드레스코드는 ‘폼생폼사’다. 이로써 아내도 외출준비 끝.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한서는 한복을 따로 챙겨서 가방에 넣고 여차하면 차에서 갈아입힐 요량이었다. 겸서는 별로 챙길 게 없어서, 오랜만에 세수를 시켰다. -_-;;; 밥 한 끼 먹으러 가는 길이 이렇게 부담스러울 줄이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면서 깊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군. 오늘 저녁, 무사히 잘 버틸 수 있도록....”

     

    ▲아, 이건 누구인가요. 한서도 이제 두 발로 섭니다. 제법 걸어 다니기도 합니다. 겸서오빠가 베란다 텃밭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나이가 되었다는 거죠. 음성 할머니댁에 와서도 이제는 거실에서 조신하게 앉아있지 않습니다. 여벌 옷을 많이 챙겨야겠습니다.

     

    차를 타고, 서울로

     

    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의 한 호텔 안에 있는 뷔페식당. 6시도 안 되었는데, 사람들이 제법 있다. 먼저 온 대구 큰집 식구들과 예약한 자리에 앉았다. 조금 있다가 서울 큰집 식구들도 오고, 멀리서 온 사촌형도 같이 자리했다. 그런데 둘러보니 우리 부부만 유난을 떨었던 것 같다. 다들 거의 평상복차림이었다. 사촌 중에서 양복자켓을 걸친 사람은 나 혼자였고, 치마 원피스를 입은 사람도 아내 혼자였다. 왼쪽 손가락의 반지가 자꾸만 접시에서 덜그럭 거렸다. 밥 다 먹을 때까지 한서 한복은 쇼핑백에서 꺼내지도 않았고, 겸서 얼굴은 금세 온갖 소스들로 범벅이 되었다.

     

                                   ▲문제의 사건 현장 사진입니다. 겸서는 케이크를 보고 좋아라 하고 한서는 저게 아직 뭔지
                                파악하지 못하는 나이입니다. 아내는 맛난 걸 혼자 먹다가 박수소리에 깜짝 놀라는 눈치입니다.

     

    뷔페식당에서 먹다가, 문득

     

    요즘 컬투가 선전하는 뷔페식당의 광고를 보면 수십 가지의 요리들이 소개되고, 그야말로 산해진미부터 그림의 떡까지 없는 게 없는 듯하다. 하지만 정작 가보면 그걸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자기 입맛에 맞는 것 몇 가지를 주고 먹게 된다. 게다가 접시 수로 동생과 경쟁을 하던 나이도 지나고 보니 본전 생각하며 많이 먹지도 못 한다. 뷔페식당이 정말 많이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먹은 데는 머리 털 나고 먹어 본 뷔페식당 중에서 제일 비싼 집이었다. 제일 비싸다고 제일 맛있다는 것은 아니다. 자리값이 있으니까. 그래도 기본 이상은 했다. 무엇보다 정신을 차리고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보통 뷔페식당을 가면 왜 그리 정신이 없는지. 뷔페식당은 기본적으로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꾸며진다. 그래서 테이블의 밀도도 상당히 높다. 그래서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음식과 음식이 놓인 선반 사이에는 통로도 없고 사람들 뒤꽁무니 쫓아서 접시에 음식 담기 바쁘다. 결혼식 뷔페식당은 그나마 예식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오고가니 약간의 숨통이 트일 짬이라도 있지, 일반 뷔페식당엔 그런 것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한 접시 먹고 또 먹으려고 일어서는 사람, 음식이 다 떨어져서 주방에서 음식 갖고 오는 사람, 애기 손 잡고 화장실 가는 사람, 자기 자리 못 찾아 접시 들고 헤매는 사람, 누가 몇 시간째 죽치고 앉아서 먹는지 감시하는 사람, 예약 손님 모시고 후다닥 지나가는 사람, 다 먹은 접시 치우느라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테이블 옮겨 다니는 사람, 다 먹고 일어선 테이블 2분만에 정리하는 사람. 온갖 사람들이 그 넓은 공간에 모여서 먹기 바쁘고 치우기 바쁘고 왔다 가기 바쁘다. 그러니 이렇게 정신 차리고 먹는 뷔페식당의 자리값이 비싼 이유는 맛에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겸서손이 보이고 다른 손은 겸서 외증조할머니 손입니다. 사건 다음 날, 음성에서 외증조할머니 생신모임에 겸서(와 아내)가 만든 꽃반지를 끼고, 얼굴은 절대로 안 나온다는 다짐을 받고 내미신 손입니다. 두 손 사이에 80년의 세월 차이가 나는군요. 


    다시 집으로

     

    암튼 그렇게 아버지 칠순 잔치가 무사히(?) 끝났고, 오랜만에 배 터지게 먹었고, 사촌 식구들도 만나서 반가웠고, 아내의 치마 원피스도 예상대로(!) 예뻤고, 조만간 시계 건전지도 갈아야 할 것 같고, 뭐니 뭐니 해도 우리집이 제일 편하다는 걸 새삼 다시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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