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단이프
  • 이프북스
  • 대표 유숙열
  • 사업자번호 782-63-00276
  • 서울 은평구 연서로71
  • 살림이5층
  • 팩스fax : 02-3157-1508
  • E-mail :
  • ifbooks@naver.com
  • Copy Right ifbooks
  • All Right Reserved
  • HOME > IF NEWS > 문화/생활
  • [26회]이제 엄마만 남았다.
    진성일 / 2013-04-16 03:17:05
  • 겸서에 이어서 한서도 응급실에서 진료카드를 만들었다. 시간도 비슷하다. 저녁 9시쯤 사건이 벌어져 집으로 돌아온 시각이 새벽1시. 집 앞에 있는 큰 병원에 갈까 하다가, 내심 그 병원에 불안한 구석이 있어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겸서와 한서가 나름 밥을 열심히 잘 먹고 기분 좋게 쉬고 있었다. 최근에 걸음마 연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서가 뒤뚱거리면서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기어다니는 시간보다는 걷거나 잡고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확실히 겸서보다 빠른 듯하다. 혼자서도 곧잘 돌아다니고 있어서 별 관심 없이 아내랑 이야기 하는 와중에 외마디 울음소리가 거실에 울린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앙~~~’

     

                                       ▲겸서의 작품을 한서가 도와주고 있다. 유화가 물감 위에 덧그리고 또 덧그린다면
                              겸서도 색연필을 칠한데 또 칠한다. 동생들은 위에 형이나 누나를 따라하다 보니 확실히 빨리 배운다.

     

    눈 위가 찢겨졌다.

     

    부딪히는 순간을 정확히 보지는 못 했다. 하지만 한서가 울고 있는 자세와 각도, 주변의 물건들을 보아 추측하면 이렇다. 신발장을 가로지르는 MDF책장은 한서의 바리케이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겸서 때는 CD수납장이 바리케이트 였다). 한서가 주방에서 저지레를 다 마치고 뒤뚱거리며 거실로 오고 있었다. 때마침 MDF사이에 서서 거울을 보던 아빠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튼다. 발밑에 자기가 낮에 신었던 양말 한 짝이 떨어져 있었으나, 한서는 발견하지 못 했다. MDF책장으로 거의 다 왔다. 손을 뻗어 책장을 짚으려는 순간, 양말에 한쪽 발이 미끄러지면서 모서리가 눈두덩이를 가격했다.

    처음엔 어디 볼이나 광대뼈에 부딪힌 줄 알았다. 바로 피가 나지 않았었으니까. 5초 정도 지났을까? 왼쪽 눈 끝을 타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설마 했는데, 눈 위가 찢겨졌다. 겸서도 이불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이마가 깨졌는데, 한서도 양말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눈이 찢어졌다. 살짝 들여다보니 겸서 때만큼은 아니어도 상처가 꽤 깊이 깊어 보였다. “어떡해!! 아우, 진짜!!!! 어떡해!!!” ‘어떡해’라는 말 밖에 안 나왔다. 거의 백번 쯤 고장난 라디오처럼 되풀이 했다. 원래 모서리에 붙여 두었던 코너 안전고무는 이미 한서가 떼어 버렸었다. 알면서도 우리 둘은 그냥 방치했다. 바로 옆에서 뒹굴고 있던 안전 고무에게 괜히 화풀이를 했다. 정말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차에 올라타자 조금 진정이 됐다. 한서도 나아진 것 같고, 겸서는 잠이 들었다. 이 밤중에 또 응급실을 가게 될 줄이야.

     

    응급실에선 간호사든 의사든, 인턴이든 일단 눈에 띄는 사람 붙잡고 사정이야기를 하게 된다. MDF책장 모서리, 눈두덩이, 나이는 돌 지났으니 두 살, 몸무게는 10.5kg. “네, 알겠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조금 후에 또 한 사람이 다가온다. “진한서요~~” 그래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해 줬다. MDF책장 모서리, 눈두덩이, 나이는 돌 지났으니 두 살, 몸무게는 10.5kg. 대답도 똑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뭐야, 아까 적어간 건 보지도 않은 거야? 그런데 웃긴 건 또 다른 사람이 오더니 똑같은 걸 묻는다. 이번엔 가운을 하나 걸친 거 보니 조금 ‘윗 레벨’ 사람인가 보다. MDF책장 모서리, 눈두덩이, 나이는 돌 지났으니 두 살, 몸무게는 10.5kg. 마치 오락 같다. 차례차례 졸병들을 상대하고 나니 이번에 파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오호, 이제야 한서 눈을 들여다보고 상태를 확인한다.

     

    단편영화<910712 희정>은 고등학생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러 동사무소에 갔다가 상대방은 의도하진 않았으나 알게 모르게 받게 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희정은 손가락이 하나 없다. 열 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찍어야 주민등록증을 발급해 주기 때문에 희정은 머뭇거린다. 겨우 용기내서 한 여직원에게 사정을 말하자 손가락을 보여 달란다. 살짝 보여주고 얼른 주머니 손을 숨긴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다며 여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그 직원도 손을 보여 달란다. 이번엔 계장에게 보고된다. 계장도 역시 손을 보여 달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직원들. 결국 여러 직원에게 부끄러운 손만 보여주게 된 희정은 동사무소를 울면서 뛰쳐나온다.

     

                         ▲단편영화 <910712 희정>의 한 장면. 감독은 주민번호가 마치 죄수들의 수감번호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남자들에겐 하나 더 있다. 군대 입소번호. 제대한지 1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크헉!!!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

     

    한서의 눈은 그나마 상처가 깊거나 심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세 번쯤 똑같은 질문을 받고 똑같은 대답을 하게 되자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만일 시급한 상황에서, 부끄러운 상처를 드러내야 하는 경우에 절차상, 원칙상의 이유로 누군가가 폭력을 가하게 되면, 받게 된다면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인가? 자신도 모르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게 되지만 우리는 그것에 점점 둔감해지는 것은 아닐까? 시스템 속에서 굴러갈 땐 그 작동원리나 과정을 볼 수가 없게 된다. 동사무소 직원이나 인턴, 간호사들 개인의 잘못일까?

    아.....이거 너무 나간 것 같다. 다들 챙겨주느라 그랬던 것을 너무 꼬장꼬장하게 바라본 것 같다. 암튼, 그렇게 파란 가운의 의사까지 모두 보고 나서도 40~50분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한서는 이미 잠들었고, 안고 있는 아내도 슬슬 졸음이 몰려오나 보다. 겸서도 졸린 듯한데, 조금 무서운지 여기서는 잠들지 않겠단다. 계속 응급환자들을 데리고 오는 구급차를 보러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굉장히 비싼 사진이다. 왜냐?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입장료를 비싸게 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역시 처음 들어와 본 곳이라 재밌었다. 창문 너머로 물끄러미 곰을 쳐다보고 있는 겸서.
     

    “진한서~~~” 다시 이름이 불리고 드디어 한서를 수술대 위에 눕혔다. 겸서도 맞았던 수면주사를 맞고 한서 역시 반쯤 풀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아, 저런 얼굴만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았었는데. 마취주사랑 달리 수면상태라서 수술 중의 고통은 그대로 전달된다던데. 그나마 겸서 때 경험 했던 터라 마음이 심하게 동요되진 않았다. 하나, 둘, 셋, 넷....다섯, 여섯. 모두 여섯 바늘을 꿰맸다. 한서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우, 그랬어. 한서 잘 참았어. 이제 다 끝났다. 집으로 가자. 우쭈쭈쭈...”

    오는 길에 겸서는 또다시 잠들고 한서도 엄마 품에서 긴장을 풀고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겸서와 한서, 그리고 나까지 이마나 얼굴에 상처를 갖게 됐다(나는 최근에 차 뒤 트렁크 모서리에 이마를 받아서 찢어졌었다. 의사 말 안 듣고 꿰매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의 흉이 남았다). 이제는 엄마 차례인가? 제발, 그만~~~!!!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H*2013/04/130416_516ceca4d979b.jpg|222222|jpg|01.JPG|#2013/04/130416_516ceca657095.jpg|119201|jpg|02.JPG|#2013/04/130416_516ceca7a2bbe.jpg|219364|jpg|03.JPG|#@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덧글 작성하기 -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덧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