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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회]주니어 목공들과 놀아보니...
    조윤주, 김우 / 2013-04-15 02: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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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한창 정신없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

    올 해에도 집살림(4,5학년 프로젝트 그룹) 교사를 맡았다며 나무벌레공방에서 한 두 차례 수업을 진행해 주기를 부탁하는 성미산학교(성산동 소재 대안학교) 교사인 현영의 전화였다. 어른들 수업보다 뭔가 활기찰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아이들을 위한 목공 수업을 열고 싶기도 하여 무조건 수락해 버렸다.

    사실, 그 전화를 받던 순간 내 손에는 ‘주니어 목공’이라는 제목의 책이 쥐어져 있었다. 아이들과 목공수업을 하면 재미있기도 하고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그 책을 받아 읽고 있는데 마치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듯 걸려온 전화의 내용이 너무도 희한해서 그냥 오케이!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3월의 마지막 주.

    연락이 없어서 안하려나 보다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예정대로 진행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수업을 준비했다. 흑. 나름 실험정신을 가지고 도전하는 건데 준비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이럴 땐 그냥 덤벼 보는 수밖에.

     

    3월 27일.

     

    날씨는 좋고 아이들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청소와 정리를 끝내고 칠판도 준비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도 해야 하고, 아이들의 이름도 알아야겠고. 오랜만에 칠판을 꺼내서 이것저것 쓰다 보니 새록새록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낙서하던 일, 수학문제 풀며 머리 아팠던 일, 빼곡한 선생님의 필기에 팔 아프게 써내려간 공책, 당번 날 수도 없이 닦아내던 칠판, 분필 가루 가득한 칠판지우개…. 아침부터 칠판 하나가 내 향수를 자극한다.

     

                                      ▲칠판을 보자 아이들은 낙서부터 시작한다. 세대 차이가 나도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다.

    처음 만나서 각자 이름을 말하고 인사를 한다. 물론 나도 아이들과 똑같이 인사를 한다. 집살림 아이들은 열두 명. 아는 아이들도 있지만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름. 쓰긴 쓰는데 아마 다 까먹을 것 같다. 그냥 얼굴이나 기억하자 싶다.

     

    오늘 할 일들을 설명하고 과제를 내 주자, 아이들은 바빠졌다.

    3조로 나뉜 아이들이 할 일은 조별로 선반을 만드는 일.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조별로 의견을 정리해서 공동의 선반을 하나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러자면 그림도 그려야 하고 의견 조율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 어려운 과정을 통과할지 기대가 된다.

    어린이 목공 체험교실 하면 이미 잘라진 나무에 못 박을 자리까지 정해져 있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하긴 인원도 많고 시간도 짧으니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서 아이들에게 설계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2013년부터 바뀐 나무벌레의 커리큘럼도 그저 못을 박고 조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하고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제작과정을 안내하기로 했다.

    나무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패질을 보여줄 때는 너나없이 열광하며 대팻밥을 얻어 주머니에 키핑하기 바쁘다. 편백나무 좋다는 건 어디서 들어가지고 향기도 맡아보고 좋아라 한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대패가 신기해서 계속 대패질을 요청한다. 아, 팔 아파. ^^

     

                                                      ▲벽에 붙어 있는 선반들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아이디어들을 내 놓는다.

                                                               ▲예사롭지 않은 드로잉 솜씨. 나보다 낫다. 하하.

                                                             ▲의논하고, 그리고. 여느 디자인 사무실을 방불케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그리고 더 창의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대안학교라서 문법보다는 문맥을 가르치고, 셈하기 보다는 수적 논리를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이상에 가깝다고 느껴지지만 시도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이미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많이 커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서, 일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학업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조금만 더 자유로워 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 본다. 아이들이 어느 선 이상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어른들의 기우다. 두고 보면 알아서 좋은 방향으로 길을 잡을 것이고, 묵묵히 기다려 준 어른에게는 먼저 멘토링을 청하며 다가오는 것이 아이들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아이들의 그림을 칠판에 옮겨 그리고 디자인 컨셉을 발표했다. 같은 조건인데 많이 다른 선반들이 등장했다.

                                 ▲본드로 하나하나 붙이고 못을 박는 중이다. 삐뚤어질까봐 신중하다. 역시 야무진 건 여자 아이들.
     
                                            ▲선생님은 열심히 조립을 도와 주는데 클램프로 총놀이 삼매경인 남자 녀석들. ^^

    어렵지만 의견을 조율해서 각자의 그림을 내 놓는다. 아직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조도 보이지만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토론하고 결정하고 같이 무언가 결과물을 내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 점심을 먹으러 아이들이 자리를 비우자 나는 바빠졌다. 다시 그리고 구조를 조정해서 재단을 해야 한다. 정해진 사이즈의 선반이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그림이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 자유로움에서 오는 많은 가능성들에 대해서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 중에서 두 개만 골라서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그림을 보고 나는 생각을 바꿨다. 세 개 다 만들기로.

     

    밥 먹고 오자 아이들은 배가 부른지 또 수다 삼매경이다.

    남자 녀석들은 역시 밥 먹여 놓으면 전쟁놀이다. 클램프며 망치며 모든 게 무기로 보이나 보다. 아이고, 애들은 역시 애들이다.

    여자 아이들은 그래도 대부분 집중력 있게 작업을 진행한다. 오늘 이 선반을 다 완성하려면 갈 길이 멀다. 처음으로 해 보는 망치질이 어색하고 무섭지만 서로 못 하나 더 박아보겠다고 줄을 서는 걸 보니 그것도 귀엽다. 너 먼저 나 먼저 아옹다옹 하는 걸 보니 친구는 친구다.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 각자 만들어진 작품과 함께 사진 한 컷.

    4월 3일.

     

    오늘은 지난주에 만들었던 선반을 마저 완성하고 선반형 전면 책꽂이 여섯 개를 쉼 없이 만들 예정이다. 설명이나 회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만 하기로 마음먹고 얼른얼른 진도를 나간다. 미리 재단된 나무로 하는 작업이지만 얘기하고 머리 쓰는 것 보다는 훨씬 재미난 모양이다. 애나 어른이나 스트레스는 머리로 받는 모양이다.

     

                                               
     
                                            ▲물건 다는 고리와 벽에 달 철물을 달아서 완성한 작품들. 너무너무 뿌듯해한다.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떠들면서도 작업이 분주하다.

    오늘은 학교의 다른 친구들에게 줄 것까지 여섯 개의 전면 책꽂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이 매우 분주하다. 밥도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서 먹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다. 밥도 하고, 가구도 만들고, 바느질도 하고. 이거면 사람 사는 데 충분하다. 성미산학교의 4,5학년 밥살림, 집살림, 옷살림 프로젝트는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초등 고학년이면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아서 좋다. 요리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20대 성인이 되도록 밥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수두룩한 이 시대에 너무 훌륭한 일이다.

     

    나는 평생 아이들을 위해 집안일을 할 자신이 없다. 스스로 해 먹고 살 줄 아는 아이들을 만드는 게 내 목표다. 그래야 내 가사노동도 많이 줄어들 거란 속셈은 짐짓 모른 체 하고 아이들에게 적당한 자율과 의무와 능력을 부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열 살 무렵부터 밥과 반찬을 하며 엄마의 일을 거들었는데 우리 아이들이라고 왜 못할쏘냐. 스스로 제 먹을 것 입을 것을 챙기는 일이 수학공식 하나 외우는 일 보다 훌륭한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면 스스로 짓는 밥과 살림살이, 옷가지들로부터 가까운 먹거리와 노동의 가치와 기타 등등 사람 냄새가 저절로 샘솟겠지.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러면서도 내 아이들이 가난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의 마음이 드는 건 또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다.

     

    교육은 학교의 선생님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은 집안의 부모가 할 수 밖에 없다. 그 무언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한 인간의 모양새가 될 것이다. 나는 훌륭한 부모가 아니다. 이 세상에 훌륭한 부모란 없다. 그냥 부모가 있을 뿐이다.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가끔은 맛있는 밥을 짓는 엄마가 될 것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내 아이들도 나와 함께 인생 독립군에 동참할 것이다. 어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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