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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회]박물관들에는 여성사가 없다.
    최선경 / 2013-03-05 03:13:26
  • 역사 속에서 어떤 인물의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웠고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데리고 남하하여 백제를 세웠던 소서노의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분제 사회였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반란을 꿈꿨던 혁명가의 존재를 감추거나 역적으로 몰 듯,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리며 분신했던 전태일의 존재는 잘 알기 어려운데, 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많은 역사서들은 승자 혹은 지배자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경우가 많아,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저술된 역사서에 여성의 존재는 그만큼 사라지거나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12월 국립여성사박물관 설립의 필요성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립박물관들의 몰여성성, 몰역사성을 지적한 적이 있다. 우리는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성평등적인지 평가해본 적이 있을까? 여성유물에 대한 개념정의는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여성과 관련된 유물이 별로 전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여성유물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내 경험상 부족하기 보다는 전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즉 전시기획자가 여성과 관련된 유물의 존재를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한 예가 국립중앙박물관의 「직지(直指)」에 관한 전시다.

     

    직지심체요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1377년(고려 우왕3) 청주 흥덕사에서 제작된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정되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독일의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본 성서(1455년 제작)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으로 당시 직지의 발견은 세계 인쇄기술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유럽의 인쇄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서구인들에게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으로 ‘최초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자존심 상하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직지의 제작과정에 여성이 참여했고, 이를 세상에 알린 것도 여성이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직지>

     

    유감스럽게도 이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한제국기 프랑스 공사로 왔던 플랑시가 돈을 주고 사갔다가 프랑스 도서관에 기증된 것이다.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와 달리, 정식으로 구입해간 것이기 때문에 돌려받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직지의 존재가 발견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72년 ‘세계도서의 해’ 준비를 위해 프랑스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던 박병선 박사가 수장고에 쌓인 오래된 동양의 책들을 뒤지다가 「직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이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책의 끝부분에 출판된 장소가 ‘청주 흥덕사’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에 출처를 알 수 있었다. 상,하 두권으로 출간되었지만 프랑스에 남아있는 것은 하권 한권뿐이다.


    「직지」의 저자는 백운화상(1299~1374)이라는 스님이지만 이 책이 출판된 것은 그가 사망한 뒤 그의 제자 석찬과 달잠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제작한 것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 제작 비용을 ‘묘덕’이라는 비구니가 시주했다는 사실이다. 묘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돈 많은 귀족 부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녀가 실제로 비구니로 출가를 했거나 일반 여신도를 비구니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혹자는 백운화상을 흠모했던 여인일 것이라고도 한다. 청주시에서는 백운화상과 묘덕의 사랑을 테마로 한 뮤지컬이 제작되기도 했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세계최초 금속활자 「직지」의 제작투자를 묘덕이라는 여인이 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랍게 한다. 금속활자판을 제작하고 이를 책으로 편찬하기까지 적지않은 비용이 들었을 텐데 그만한 비용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를 책에 기록할 정도로 그녀는 막강한 파워를 지닌 존재였다. 고려사회에서의 여성의 재력과 재산권 행사,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게 할 정도로 여성의 자기주장이 가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주 흥덕사

     

    ‘직지 대모’로 불리는 박병선 박사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에 새로 박물관을 건립하여 이전하면서, 비록 국내에는 없지만 인쇄실에 「직지」복제품을 전시했다. 그 역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당시 전시에서는 직지에 대한 설명에서 묘덕에 대한 설명도 간단하고, 직지 발견의 일등공신인 박병선 박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없었다. 「직지」책의 끝부분을 복사해 전시한 패널에도 묘덕의 이름은 쏙 빼놓고 제자들의 이름 부분만 게시해 놓았다. 누가 보아도 묘덕의 존재는 알 수가 없었다. 직지와 관련된 여성 모두 묻혀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2009년 역사관이 전면 개편되면서 다시 바뀐 전시실에는 「직지」를 세상에 알린 여성학자 박병선 박사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었고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묘덕’을 동그라미로 표시해서 강조했다. 이는 큐레이터가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전시방향과 진실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박물관 측에서는 그 이전에 일부러 빼놓은 것도 아니었고 지금은 그냥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전시한 것이지 특별히 여성주의적 생각이 있어서 바꾼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여부를 알려줌으로서 일반 대중들은 좀더 가깝게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2009년 개편된 직지 설명

     

    ‘직지 대모’로 불리는 박병선 박사(1928~2011)는 1955년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직지와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낸 일등 공신이다. 프랑스 현지에서의 반대와 경계의 분위기를 무릅쓰고 홀로 외롭게 싸웠던 그녀의 불굴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직지는 발견되지 못했고 외규장각 도서 역시 반환받기 어려웠다. 또한 묘덕이라는 여인이 없었더라면 직지라는 금속활자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사 속 여성들에 대한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여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그래서 역사 속 여성을 밝혀내는 것은 그냥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왜곡이 일어나느냐 아니냐’ 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다.

     

                                                                           ▲박병선 박사 (2011년 타계)

     

    동영상: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에서 제작한 “직지의 어머니 박병선 박사”(10분)

    http://www.youtube.com/watch?v=gjQkY6--w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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