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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회]이장님은 슈퍼맨
    정상오 / 2013-02-25 10:34:01
  •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봄이 오는 거야”하고 햇살이 이야기해 주는 계절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 이런 저런 에피소드가 많아서 쓸 이야기도 많았다. 조금 지났지만 오늘 올리는 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번 겨울은 정말 추웠다.


    “마을살이는 군대와 같습니다.”

     

    마을에 사는 거 어때요?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마을살이는 군대와 같습니다. 눈 오면 눈 치우고, 길이 얼면 녹이고, 비가 올 때 막히는 배수로는 없는지 살피고, 내가 안하면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이 군대와 같습니다.”

    우리 마을의 첫해 겨울은 눈이 많이 오고, 때 아닌 겨울비가 내리면서 길은 온통 얼어붙고 수도가 어는 집이 생기면서 전업주부인 나에게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눈을 치우러 가는 일이 하루의 일과가 된다. 눈이 올 때 마을풍경을 보고 있으면 일본의 삿포로가 부럽지 않지만, 눈이 그치고 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치우러 가는 일이 가끔은 고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눈을 치워야 다들 출근을 할 수 있으니 주차장과 마을길을 치우러 가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눈이 왔다. 이른 아침 6시 30분에 옆집, 앞집 형님과 함께 부지런히 눈길을 치웠다. 마을생활은 누군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모두가 고생이다. 내가 부지런해지는 일이 제일 상수다. 영하 15도에도 걱정이 없던 형님 댁의 수도가 영하 17~24도의 강추위로 내려가면서 얼었다. 나와 형님은 쪼그리고 앉아서 몇 시간을 녹여야 했다. 나는 우리 마을을 만들 때 기획하고 관리를 했으니 피해갈 수 없는 ‘원죄’가 나에게는 있다. 외면할 수도 없고 또 물이 언 일은 외면할 일도 아니다.

    공사할 때 독일의 단열기준에 맞추어 두 배나 단열을 하고, 동파방지도 고려한 공사를 했는데 수도 계량기가 창고에 있는 형님 댁만 얼게 된 것이다. 우리 마을은 정말 춥다.

    이번 겨울 들어 영하 17도 아래로 내려간 것만도 벌써 몇 번째이니 아파트에 살 때를 생각하면 겨울철 단독주택은 낭만보다는 책임이 더 요구되는 살림살이다.

     

    “내년에는 김장 함께 합시다.”

     

    이번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에는 윗마을(큰 모산)과 우리 마을(작은 모산)을 대표하시는 이장님이 계신다. 난 이장님은 선출만 되면 누구나 하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큰 눈이 오고 나니까 제일 먼저 마을 이장님이 트랙터를 몰고 마을 앞 지방도로와 윗마을(큰 모산) 도로까지 모두 치우고 다니는 것을 본 것이다. 우리는 장갑, 목도리, 모자를 쓰고 헉헉거리며 눈을 치우는데 이장님이 트랙터로 지방도로까지 모두 치우는 모습은 정말 슈퍼맨 같아 보였다. 이장님이 살고 계시는 윗동네는 원주민 마을이다. 30가구가 김장도 함께 한다고 하는데 그 일을 이장님과 새마을 부녀회장님이 모두 관장을 하신다. 글쎄 한 집에 100포기에서 많게는 500포기까지 김장을 하시는데 그 것을 모두 다 마치려면 몇 주간에 걸쳐 한다고 하신다.

    한 번은 마을 김장을 모두 마치시고, 밥이나 한 끼 먹으러 오라고 하셔서 올라갔더니 이런 제안을 하셨다. “내년에는 아랫동네(우리 동네)도 김장 함께 합시다. 한 2,3주에 걸쳐서 다 같이 하면 됩니다.” 나는 마을 대표도 아니고 결정권한도 없고 해서 “아, 예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 마을에 물어보도록 할게요.” 했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몰라도 이곳 마을 이장님은 능력이 왕창 있으셔야 한다.

    누가 나보고 동네 이장으로 나가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거다. 그 이유는 40평생 김장경험이 10포기 내외인데다 결정적인 것은 농사를 안 하니까 트랙터가 없다. 반야가 들으면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아빠 우끼다, 그지”

     

    ▲눈이 오고 나서 만든 눈사람들과 함께. 반야가 눈사람을 제법 만든다. 눈도 만들고 코도 만들고 머리카락도 가끔 만든다. 요즘 그리는 그림들도 눈, 귀, 코, 입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림으로 손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능력이 점점 세밀해 지고 있다.

     

    엄지장갑을 꿰매어 주기로 했다.

     

    눈이 많이 오고, 날씨도 이렇게 추워지고 나서 우리가족은 모두 장갑을 끼고 다니는데 반야는 장갑을 끼지 않고 다닌다. 유치원에 갈 때도 그냥 간다고 해서 몇 번을 실랑이를 벌였다. “반야, 날씨가 너무 추워, 유치원에 가면 밖에서 놀기도 하는데 장갑을 끼고 가야지 그냥 가면 손이 시려워서 안 된다” 그래도 아이는 한사코 그냥 간다고 한다. 유치원 차가 올 때도 되었고 아침에 실랑이 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라서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아이가 왜 장갑을 안 낀다고 하는지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유치원에 가는데 반야만 맨손으로 다니면 아빠가 육아를 하니까 장갑도 안 끼워 보낸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괜히 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이가 가진 장갑들이 몇 개가 있는데 장갑들마다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엄지장갑, 큰 장갑, 다섯 손가락장갑, 빵장갑(엄지 끼는 곳도 없이 그냥 빵처럼 생긴 벙어리장갑인데 큰고모가 만들어 주었다)을 가지고 있다.

    장갑 4개 가운데 손에 끼기 쉬운 장갑은 엄지장갑인데 아이가 잘 끼고 다니다 지난 며칠 안한다고 해서 다른 장갑들도 주었지만 싫다고 한다. 아이의 이유는 모두 다 그럴 듯하다. 큰 장갑은 커서 안하겠다고 하고, 빵장갑은 엄지가 없어서 싫다고 하고, 다섯 손가락장갑은 끼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엄지장갑은 특별한 이야기 없이 안 낀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왜 끼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해져서 실밥이 많이 나온 엄지장갑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아무리 어린 아이지만 친구들하고 비교도 될 것 같은 생각이 그때서야 들었다. 사실은 두해나 써서 해진 장갑을 낄 때마다 장갑을 하나 사야지 했는데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참에 새로 사는 것보다는 앞으로 1년은 더 쓸 수 있어서 엄지장갑을 꿰매어 주기로 했다.

     

    우리부부는 신고 있는 양말들도 구멍이 조금 난 것은 꿰매어서 신는데 아이 것을 손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 물건을 수선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물품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음에 안 들면 저것을 쓰면 될 정도로 옷가지들이 많아서 수선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장갑은 많기는 해도 아이가 선호할 만한 것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자리를 잡고, 해진 장갑을 한손에 들고 아내의 재봉틀 옆에 있는 재봉함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 엄지장갑의 해진 부분을 한 땀 한 땀 꿰매고 나니 장갑이 제법 깔끔해졌다. 진작 이렇게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든다.

    아마도 아빠가 육아를 하면 이런 것이 빈틈인 것 같다. 양말이나 아이 옷, 소품 같은 것들은 아내가 챙겨주겠지 하고 아내에게 기대를 많이 한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빠가 아이를 돌보고 있으니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사거나 채워놓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종종 이런 빈틈이 생기고는 한다. 이런 빈틈들은 아이 옷, 아이가 먹을 반찬, 간식거리 등등 소소한 것들이다.

     

    어머니가 수선해 주셨던 옷들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양손에 꿰맨 장갑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아빠가 엄지장갑을 어떻게 했는지 설명을 해주었더니 아이가 씩 웃으며 좋아한다.

    다음날 아침부터는 아이가 새 장갑처럼 깔끔해진 엄지장갑을 끼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빠가 조금 둔했던 것이다. 꿰매어 달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런 표현이 없던 것을 보면 아이가 ‘꿰매는’이라는 단어를 몰랐고 또 수선해서 쓰는 개념도 없었던 것 같다.

    육아를 하면서도 매너리즘이라는 것에 빠진다. 육아하는 데 무슨 매너리즘이냐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쉽게 빠지게 된다. 육아도 생활이 되면서 익숙해지고, 물건은 부족함이 없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보니 마음씀씀이가 필요한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일상이 되다보니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드물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늘 살피고 나의 모습도 지켜보는 집중이 필요하다.

     

    ▲아빠가 꿰매 준 엄지장갑. 손목 부분에 보푸러기들이 잔뜩 일어났었는데 말끔히 정리하고 났더니 제법 새 장갑처럼 되었다. 장갑을 꿰매고 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놀러온 서영이네 엄마가 새 장갑을 사주어서 아빠가 꿰매 준 장갑은 서랍에 들어가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반야  손을 따뜻하게 보살펴준 장갑아, 고마워

     

    내가 어릴 때는 어머니가 늘 양말 뒤꿈치, 장갑의 손가락부분, 바지의 무릎, 팔꿈치 부분의 해진 곳을 헝겊을 덧대어서 수선을 해 주시고 “상오야 입어봐라, 구멍이 나면 꿰매서 입어야지 그냥 다니는 거 아니다” 하셔서 이런 이야기를 죽 들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지금은 물건이 넘치는 세상이라서 구멍이 나면 버려도 아까운 것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내가 자라던 그 때와 아이가 성장하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오줌 묻은 옷가지나 양말은 행군 물을 모아 손빨래를 하고 부피가 큰 다른 것들은 세탁기에 넣어서 빨래를 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아이가 크면 빨래를 할 줄 모르겠는데! 손수 빨래를 할 이유가 없어졌잖아. 빨래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대신 해주는 기계가 있으니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군. 음…….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련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습관이 몸에 들면 좋겠는데 우리 사는 세상은 정 반대로 가고 있으니 부모로서 어떻게 처신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그래도 작은 빨래는 손수 하고, 양말이나 해진 가벼운 옷가지 정도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수선해서 써야겠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내게 해주신 꿰맨 양말, 바지, 옷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수선해주신 옷은 늘 내 몸에 잘 맞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이것저것을 스스로 수선해서 입고 쓰는 것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엄마, 고맙습니다. 자식을 기르는 모습을 그 때 말없이 보여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아이를 기르면서 두 분의 고마움과 감사함을 알게 됩니다.”

    아이한테는 “빨래해서 입어라, 구멍 난 양말은 꿰매 신어라” 이렇게 말할 생각은 없다. 우리 부부가 빨래하고, 수선해서 입으면 아이도 따라 하거나, 따라 하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가족이 실천하는 몇 가지 환경이야기도 들어볼만한데 다음에는 그 이야기도 몇 가지 써야겠다. 이런 기록들은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기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우리 부모님의 삶을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아이도 크면 “맞아 우리 엄마, 아빠가 이렇게 하셨었지”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만하다. 참고로 반야네 집은 우리 마을에서 물, 전기, 난방유 사용량이 가장 적은 것도 슬쩍 자랑질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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