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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회]마을길이 해주는 이야기들
    정상오 / 2013-02-12 12:58:42
  • 마을에 오기 전 우리가족이 살던 곳은 ‘구문리’라는 오래된 마을 옆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였다. 그곳에서 2년 째 살고 있던 우리부부에게 신록의 계절 6월에 반야가 왔고, 그곳 구문리 동네길을 나와 아내는 뱃속의 반야와 함께 자주 산보를 했다. 구문리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살고 계시고 홈스쿨링을 하는 집도 있었다. 반야네는 6층에서 살았는데 집에서 바라보면 마을회관, 골목길, 텃밭을 일구는 모습, 타작을 하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다. 가끔 홈스쿨링 집을 바라보면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던 골목길 풍경이다.

     

    골목길이 보이는 전망

     

    6층을 선택한 이유는 마을길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골목길에는 눈요기 거리가 많았다. 빨래들, 작은 놀이터, 지나가는 바람, 은사시 나무 꼭대기에 모여 앉아 있는 새들. 덕분에 반야와 함께 “저기 새가 날아간다. 우와 바람도 날아가네.” 하며 골목길과 하늘을 가리키곤 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을길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의 골목길이 생각이 난다. 어려서부터 골목길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아파트 분양을 받을 때도 남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분양을 받았다.

     

    남들은 전망이 좋다는 높은 층을 선택할 때 나는 아내를 설득해서 6층을 분양받고, 골목길이 보이는 전망을 선택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우습기도 하고, 별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면서, 남들이 물어보지 않아도 골목길 풍경을 으레 자랑하고는 했다. 아마도 우리부부는 집을 생활하는 곳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세차익을 생각해서 나중에 팔 것을 고려했다면 전망이 확 트인 곳을 선택했겠지만 팔고 사는 것이 전제가 되면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내 마음도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곳 들꽃마을에 들어오기 위해 집을 팔 때 남들이 이야기하는 시세차익은 한 푼도 더 받지 못했다. 낮은 층에 전망도 별로인 곳은 소위 로얄층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그곳 아파트에서 무탈하게 살았고, 반야도 우리에게 왔으니 참 고마운 집이 아닐 수 없다. 이사 나오면서는 “집아, 그 동안 고마웠어, 새로 오신 분들도 아끼며 잘 사용하실 거야”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반야아빠가 별난 것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면 영화나 드라마, 다큐 등의 프로그램을 볼 때도 주연을 보기보다는 조연과 조연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 화면속의 배경 건물들, 나무, 문패, 간판, 하늘, 지나가는 차의 생김, 사람들의 표정, 이런 것을 더 즐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나를 아내는 참 신기해 한다. 가끔 아내는 내게 “당신은 참 별난 사람이야”라고 한다. 사실 별난 사람은 아니고 다만 관찰하는 대상이 다를 뿐인데 그렇게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런 나의 습관 때문일까? 나의 직업은 건축가다.

     

                                   ▲우리집 콩나물. 옆집 누님이 주신 쥐눈이 콩으로 기르는 콩나물입니다. 제법 맛있게 자랐습니다.
                    콩나물 무침, 콩나물국을 해먹었답니다. 처음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 자랄 때는 쑥쑥 자라네요.
     

    인기 없는 끝집을 선택한 이유

     

    우리 마을을 기획할 때도 가장 중점을 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길이다. 차는 마을 공동주차장에 세워두고 길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 되도록 했다. 차가 길과 마당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우리 집은 마을의 가장 끝집이다. 주차장에서 120여 미터 거리에 있으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아침 출근길이나 외출 때 자동차키나 물건을 두고 오면 되돌아 다녀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한 거리다. 그래도 번거로울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을이 평지에 지어져서 전망이 뛰어나지도 않고 인근에 축사가 있어서 4계절 소똥냄새가 퍼지는 뒷자리는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부부는 인기 없는 끝집을 선택했다. 이유는 딱 한가지다. 반야아빠는 집까지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파트에 살 때도 차를 입구 먼 곳에 세워두고 집까지 걸어가는 걸 즐기던 나였으니 이상한 일만도 아니다.

    마을에 도착해서 길을 걸어가면 이런 저런 생각으로부터 머리를 쉬게 하고, 들떠 있던 마음도 길에서 잠시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걷는 것을 즐기고, 골목길을 누비고 다녀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다.

     

                                       ▲썰매타는 아이들. 마을 연못에 얼음이 얼었어요. 지난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꽁꽁 얼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을 삼촌이 만들어준 썰매를 타고 놀고 있습니다. 반야는 오빠가 밀어주고 있어요. 아이들은 이렇게 노는 게 맞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부터는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일 일이 많아졌다. 아빠가 권해주는 옷은 싫다고 하는 아이를 꼬시고 달래다 지친 아빠, 밥은 안 먹고 아침부터 군것질에 관심을 들인 아이에게 뿌루퉁해진 아빠, 아침밥 먹고 동화책을 3~4권 읽다가 늦어서 빨리 가자고 보채는 아빠, 이런 내가 마음이 풀리는 곳은 바로 마을길이다. 아이와 주차장까지 걸어서 가는데 실랑이를 벌인 날에는 걸어가는 중에 내가 늘 사과를 한다. 사실 아이는 사과할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생각해도 화를 내고 삐지고 입이 나오는 것은 아빠이기 때문에 조금 웃기기도 하다. 왜 매일 내가 먼저 삐져야 할까?

    아이와 마을길을 걸어갈 때는 아빠가 먼저 “반야야, 아빠가 화 내서 미안해, 그래도 다음에는 책 한권만 보고 가자, 유치원차가 기다려야 되잖아” 한다. 아이와 화해할 때는 손바닥을 들어서 하이파이브를 많이 한다. 걸어가면서 노래도 한곡은 부른다. 요즘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 다 힘들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 모두가 나의 친구랍니다.’를 부르면서 율동도 하고 후렴도 하나 하면 주차장에 도착한다. 유치원차에 탈 때쯤이면 화는 다 풀리고 손을 흔들며 오후에 만날 것을 약속한다.

     

    아내의 손을 잡을 때보다 사실 더 좋다.

     

    어려서부터 골목길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커서도 마을길은 참 괜찮은 역할을 한다. 걸어가는 동안 바람도 불어오고 골똘하게 생각하던 것들도 파란 햇살을 받으면서 풀어지고, 아이와 손을 꼭 잡고 갈 때는 아이의 따뜻한 손이 내 손안에 쏙 들어온다. 난 그 느낌이 참 좋다. 아내의 손을 잡을 때보다 사실 더 좋다. 아이가 우리에게 온 이후로는 아내의 손을 진지하게 잡아본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아이의 체온이 아빠인 나에게 그대로 느껴지고 아이도 아빠의 체온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마을길이 참 좋다.

     

                              ▲조카들이 놀러왔습니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아요. 덕분에 반야는 초등학교 오빠들하고  재미나게 놀고  보살핌도
                    받았습니다. 조카들은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일주일 만에 집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얼른 오라고 하네요.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마을길에는 다양한 ‘꺼리’가 기다리고 있다. 주차장에서 아이를 맞이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오늘은 어떻게 놀았는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물어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늘 하루 아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가끔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오는데 그럴 때는 둘 중에 하나다.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바지에 오줌을 쌌거나, 졸려워서 눈이 가물가물할 때다.

    가끔 아이가 업어달라고 하거나 안아달라고 하는데 아이를 업고 마을길을 걸어갈 때면 아이는 참 많이 재잘거린다. “오늘은 주원이가 사탕 줬다. AB 선생님이 스티커 주셨어, 시아는 오늘 안 왔어, 아픈가 봐, 내일은 호떡 만든대” 아이를 업고 길을 걸으면 하루하루 체중이 늘어가는 아이를 느낄 수 있다. 덩달아 나도 마음속 체중이 늘어가고 있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가 앞집 동수삼촌네 간다고 하면 못이기는 척하고 아빠도 따라간다. 삼촌네 들어가면 늘 맛있는 군것질이 나온다. 사탕, 과자, 빵. 알고 보면 번역 일을 하시는 동수삼촌이 반야 주려고 시내에 일보러 나가실 때마다 사다가 놓는 것들이 많다. 고마운 이웃들이다.

     

    길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아이와 아빠가 화해를 하고, 동네에서 기르는 개들(대발이와 둥이)도 마중 나오고, 고양이들(하루와 대로)도 따라오고, 맑은 날은 햇살도 따라오고 동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마을길은 아빠와 반야에게는 화해의 길, 이야기의 길, 노래의 길이다. 반야도 커서 걷는 것을 좋아할까 궁금하다. 걷는 것을 즐길지 어떨지는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빠와 엄마, 오빠, 삼촌, 언니들이랑 함께 걷던 이 길은 기억할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에 손을 잡고 걸어갈 만한 동네길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그 길의 풍경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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