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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회]조선시대 해돋이를 본 여인들
    최선경 / 2013-01-14 10:34:06
  •                                                                                      ▲출처:뉴시스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정동진 등 동해 바닷가는 올해도 어김없이 여자남자 할 것 없이 새벽부터 해돋이를 보겠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일출을 보면 무엇이 달라지기에 그 요란법석을 떠는 것일까?

     

    해돋이의 특별한 경험

     

    몇년 전 1월 1일 지리산 해돋이를 보겠다며 산에 오르던 날, 산 밑의 식당 아주머니는 “이 추운 날 왜 사서 고생이여~” 하며 우리의 유난스러움이 이해 안가는 듯 말씀하셨다. 평상시 하늘에 ‘떠있는 해’는 누구에게나 그냥 일상의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떠오를 때’의 해는 다르다. 수평선 너머 지상으로 올라오는 해돋이의 특별한 광경은 많은 입소문과 기행글들을 통해 그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며, 창조의 한 모습이다. 마치 신이라도 접한 듯이 조물주 앞에 숙연함을 느끼게 하고 일상에 매몰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돋이의 감동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벽부터 성화를 부리게 하고 불편과 번거로움을 감수하게 했던 것이다. 나 역시 소문으로만 듣던 일출광경이 보고 싶어 몇 번이나 동해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한 번도 제대로 된 일출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해돋이를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고 그것을 실현시켰던 여인이 있었다. 학창시절 교과서로 접했던 「동명일기」의 ‘의유당’과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여행한 ‘금원’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들은 대다수 여성들이 누리지 못한 해돋이 광경을 목격하고 그 감동을 기록으로 남긴 특별한 여성들이었다.

     

    「동명일기」의 주인공 의유당 의령 남씨

     

    의유당 의령 남씨(1727~1823)는 함흥 판관으로 부임한 남편 신대손을 따라갔다가 관북의 명승지인 낙민루와 북산루 등지를 유람하고 일출과 월출을 본 경험을 『의유당관북유람일기』로 남겼다. 그중 동해에서의 해돋이 광경을 한글체로 묘사한 「동명일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영조 45년(1769) 의유당 남씨는 함흥에 오자 경치 좋기로 소문난 곳들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남편에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만다.

    “여자의 출입을 어찌 가벼이 하리오.”

     

    주변 장터를 구경하는 것도 남편의 허락이 필요했다. 물론 판관의 부인이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도 있었다. 부임한지 2년이 지나서야 겨우 남편의 허락을 받고 주변 낙민루와 북산루를 돌아보고 마침내 1771년 8월 동해로 해돋이 구경을 가게 되지만 아쉽게도 그 해에는 날이 흐려 제대로 보질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772년 9월에 다시 해돋이를 보게 된다. 그때의 기록이 「동명일기」이다.

     

     

     

    홍색(紅色)이 거룩하여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놀더니, 이랑(기생 이름)이 소리를 높이하여 나를 불러, “저기 물밑을 보라” 외치거늘,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가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와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琥珀:보석의 한 종류) 구슬같고 맑고 통랑(通郞: 속까지 비치어 환하다)하기는 호박도곤(~보다) 더 곱더라.

    - 류준경, 『의유당관북유람일기』현대역 참조

     

    물 위로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보며 ‘쟁반같은 것이 수레바퀴 같아’, ‘항 같고 독 같다’, ‘소 혀처럼 드리워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하더라’ 등 다양한 그녀만의 표현 기술들이 학창시절 밑줄치며 공부했던 기억을 새롭게 한다. 우리가 배운 이 일출 기록 이외에도 동해로 가는 과정 중에 일어난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판관의 부인이라는 그녀의 신분상, 한번 이동하게 되면 그 관청에 속한 노복들과 기생들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왕이 행차하면 보통 움직이는 부대가 수백명에 달하듯이 고을 사또가 이동하면 수십명이 함께 이동했다. 종5품 판관직이 고을 수령은 아니지만 글의 정황상 수령급 대우를 받은 듯하다.

    새벽 해를 보려면 그 전날 출발을 하는데, 도착한 날 저녁에는 귀경대라는 곳에 올라 먼저 월출(月出)을 구경했다. 그리고는 돌아와 한숨 자고 새벽에 다시 바닷가로 가는데, 날이 흐려 지난번처럼 또 못보고 갈까봐 노심초사, 몇 번이고 하인을 불러 뱃사공(沙工)에게 상황을 물어보고 오게 한다. 사공들이 경험이 많아 일출을 볼 수 있을지 못할지 판단이 정확했나보다.

     

    사공이,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고 하였는데도 마음이 미덥지 않아 초조해 하더니 닭이 몇 번 울자 잠도 안자고 일찍부터 깨어 기생과 비복을 마구 흔들어 깨운다.

    하인이 와서, “관청 감관이 다 아직 너무 일찍이니 못 떠나시리라 한다.”고 아뢰었으나 곧이듣질 않고 재촉하여 떡국을 쑤었는데도 먹질 않고 먼저 출발한다. 그 바람에 노복과 기생들이 서둘러 쫓아 나오니, 바닷가 추위가 매섭다.

    자는 아이를 급히 깨워 왔기에 추워 날뛰며 기생과 비복들이 다 이를 두드려 떠니, 사군(使君: 남편)이 소리치며 말하기를,

    “상(常) 없이(상식에 어긋나게) 일찍 와 아이와 실내(室內: 남의 아내 혹은 여자들) 다 큰 병이 나게 하였다.” 하고 걱정하니, 내 마음이 불안하여 한 소리를 못하고 감히 추워하는 눈치를 못하고 죽은 듯이 앉았으되, 날이 샐 가망이 없으니 자꾸 영재를 불러 “동이 트느냐?” 물으니, 아직 멀다고 대답한다.

     

    일출을 보고 싶어 조바심이 난 의유당이 자신 때문에 너무 일찍 나와 사람들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며 미안해하고 눈치보는 모습이 요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붉은 기운만 있고 해뜰 기세가 보이지 않자 기생들은 해뜨기를 보긴 틀렸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있다고 하는 논쟁 장면이 나오는데, 이 또한 우습기까지 하다.

    마님 때문에 잠도 못자고 일찍 나온 기생들은 입을 모아, “소인들은 이번 뿐 아니라 자주 보았으니, 어찌 모르리이까. 마님 큰 병환 나실 것이니 어서 가자”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생 아이들이 철모르고 지레 이렇게 군다”고 한다. 결국 기생들과 계집 종 몇 명은 마님이 가마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먼저 가버렸다.

    하지만 사공이 “오늘 일출은 유명할 것이라”는 말에 가마에서 내린 의유당이 다행히 일출을 보게 된 것이다. 기생 말을 들었다면 하마터면 일출을 못봤을 뻔 하였다. 그랬다면 우린 이 「동명일기」를 영원히 접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관동팔경에서 바라본 금원의 해돋이

     

    조금 지나 홀연히 붉은 거울 하나가 바다로부터 불쑥 솟아올랐다. 번쩍이는 빛이 출렁여서 마치 흰옥이 쟁반위에 있는 듯, 진주 항아리를 높이 받든 듯, 푸른 물결 물굽이 밖에서 가벼이 흔들리는 붉은 비단우산 같았다. 얼마 후 흐린 구름을 뚫고 빠르게 둥근 바퀴가 그대로 솟아오르니 나도 모르게 깜짝놀라 미친 듯 기뻐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듯 기뻐했다. 상서로운 빛이 해면 아래에 비춰 한바탕 붉은 구름을 부풀리다가 또다시 평지로 쏟아지니 위아래가 온통 붉어져 마침내 하늘과 땅을 한덩이 불꽃으로 만드니, 참으로 보기드문 장관이었다.

    - 금원, <호동서락기>

     

                                                                      ▲겸재 정선의 낙산사 일출 그림

     

    19세기 초 14세에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여행했던 금원이 낙산사 의상대에서 해돋이를 보고 쓴 글이다. 여성이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 경우는 있어도 한가히 해돋이를 볼 겨를은 없다. 해돋이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 뿐 그것이 하나의 관광, 유람, 관조의 대상이 될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돋이를 본 그녀들이 대단한 특혜를 누린 여성들도 아니었다. 남다른 호연지기와 호기심, 갈망이 컸을 뿐이다. 지금이야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지방 자치단체들의 홍보효과 덕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차고 넘칠 정도로 해돋이를 찾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지만, 정보가 제한적이었던 조선시대에는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금원은 관동팔경의 마지막 월송정에 이르기까지 실컷 바다를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상념에 젖는다.

     

    “오직 바다의 큰 기운을 깨닫게 해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이 덧없는 것임을, 그리고 몹시 가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린 무언가 변화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그중의 하나가 일출광경이다. 일출을 본다고 갑자기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일출이나 여행은 힐링의 효과가 있다. 그녀들이 정말 간절히 보고싶고 원했던 것도 자신의 변화와 치유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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