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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회]정성 만으로는 안된다. 이치를 알아야.
    정상오 / 2012-12-25 11:40:28
  • 반야가 다니는 유치원 원장님과는 이런저런 소통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특히 매일 아침 마을 주차장까지 유치원차가 들어올 때 원장님과 잠깐 나누는 이야기들은 아이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매일 뵙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아이를 돌보아 주시는 또 한분의 보호자 ‘엄마’이기에 감사하기도 하고 해서 작은 것으로라도 늘 대접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난 김에 지난주에는 저녁식사에 원장님 부부를 초대하였습니다.

    선생님들과 원장님 부부를 모셨는데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선생님들은 모두 선약이 있다며 빠지고 원장님 부부만 함께 오셨습니다.

     

    함께 식사하기는 우리마을의 문화

     

    유치원이 시골마을에 있고, 우리가 사는 공간도 시골이다 보니 저녁식사에 모시는 일이 서로에게 큰 부담은 없습니다.

    특히 우리 마을은 한주에도 몇 번씩 이집 저집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은 우리들에겐 낯설지 않은 또 하나의 문화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대접할까 생각하다가 마침 팥이 한 봉지 있어서 팥죽을 준비하고,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월남쌈을 준비했습니다. 월남쌈은 생각보다 준비가 수월하고 또 식성에 맞게 음식을 곁들여 먹을 수 있으니 우리 부부가 선호하는 식사 메뉴입니다. 다만 계절이 겨울이니 따뜻한 팥죽을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반야아빠가 제법 요리 솜씨가 있거든요. 이런 때 자랑질을 좀 하려고요. 너무 흉보지는 마세요. 특히 들깨죽, 팥죽, 현미죽, 짜장, 카레, 짬뽕, 스프 안 들어간 라면, 피자, 군고구마, 군감자, 들깨강정, 수육(참고로 반야아빠는 채식가), 나물무침, 잡채 이런 음식들은 반야아빠가 잘 하는 대표음식들입니다. 남자가 뭐 이런 것을 다 하냐고 하실 분도 계실 텐데요. 요리하는 과정은 즐거운 시간이고 또 이치를 알아야 하는 것들이고,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과정이 아주 재미납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맛있어 하니 좋은 일이죠.

     

    ▲크게 더 크게 울어라. 동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어요. 커져라~ 커져라~. 반야는 동네 길에서 정말 크게 웁니다. 아주 시원하게. 녀석이 한 성질 해요. 아빠를 닮았나? 궁금하네요.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반야가 우는구나” 합니다.
     

    원장님 부부와의 저녁식사를 통해서, 아이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여행을 좋아하시는 두 분의 여행이야기에 여행정보까지 한 아름 얻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원장님이 저녁식사 맛있게 드셨다고 유치원에서 직접 기른 배추로 담근 김장 김치를 한 박스 가져다 주셨어요. 이건 완전히 횡재한 것이죠. 유치원 김치가 맛이 좋거든요. 그리고 다음번에는 두 분이 저녁식사에 초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은근히 언제 갈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은 ‘이치’

     

    마을살이를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요. 아이를 기르는 일은 농사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더군요. 손바닥 만한 텃밭 하나 하면서 무슨 농사타령이냐고 핀잔을 주셔도 오늘은 뻔뻔하게 비유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농사는 정성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계시죠? 정말 그래요. 배추 한포기 기르는 일도 생명을 기르는 일은 정성만 가지고는 될 수 없다는 것을 텃밭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텃밭을 하면 할수록 내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즉 때와 장소, 더하고 덜함, 거기에 손발 가득한 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콩, 배추, 무, 가지, 토마토, 고추, 홍당무, 시금치 이런 푸성귀들을 심어 보았지만 주변 어르신들의 농사를 볼 때마다 반야아빠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처음 하는 텃밭이야, 천천히 해” 이렇게 위안을 하면서 지난 계절을 보냈지만 혹시 옆 마을 동네 어르신들 가운데 누가 우리 텃밭을 보기라도 할까 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마을 이장님이나 인근 동네 어르신들 농사를 눈여겨 보면서 배운 것이 “하루만 늦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하는 일이니 주변 어르신들의 농사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다음날 바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이야기 한 것처럼 ‘컨닝’이 필요한 것이죠. 시험을 볼 때는 남의 것을 슬쩍 보는 일이 잘못 된 일이지만 농사에서는 모르는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은 최고의 학습서이자 지침입니다. 고추를 심으면 다음날 나도 고추를 사다가 심고, 약을 주면 진딧물을 잡고, 이렇게 하루만 늦게 하면 됩니다. 말이 하루 늦게 하는 것이지 부지런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도 예전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는 주변 어르신들이 농사 짓듯이, 우리 아이들을 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식농사에 대해 어른들이 이야기도 해주고 몸소 보여주기도 하면서요. 마을육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전 요사이 이렇게 말하고 다닙니다. “다시 마을을 시작하세요.” 제가 마을에서 사는 것처럼 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을에서 살아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파트 단지에 마을을 만들고 동네에 마을을 만들라고 하면서요.

     

    ▲3일에 한 번 반야네 구들 굴뚝에서 연기가 나와요. 구들방이 너무 뜨거워서 엉덩이 지지기에는 최고입니다. 반야는 유치원에 다녀와서 가장 먼저 구들방 이불 밑에 쑥 들어가서 누워요.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 따뜻해” 조그만 녀석이 벌써부터 아랫목 따신 것을 아네요. 궁둥이 지지러 한 번 오세요. 구들에서 구운 ‘구들빵’ 대접도 한 번 하려고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을 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와의 관계가 밀착될수록, 아이는 부모에게 기대를 하고 부모는 아이가 이제 알아서 하겠지, 라고 기대를 합니다. 이놈의 기대가 정말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떼를 쓰고 부모는 떼쓰는 아이를 보면서 “울지 마라, 보채지 마라, 오줌 싸지 마라.” 이렇게 떼를 쓰는 것입니다. 울고 보채고 떼쓰는 방법은 아이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의사전달의 수단인데 말이죠. 한마디로 아이의 의사전달 수단을 제가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정말 웃음이 나옵니다. 말을 못하게 하니 아이는 답답할 노릇인 거죠.

    아이가 자라서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어른인 제가 설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아이에게 훈계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정말 무서운 어른입니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대신에 훈계와 설득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요, 그 설득과 훈계의 중요한 출발점은 바로 내가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빠인 저의 욕구를 위해서 아이에게 훈계와 설득을 하는 것이죠. 자기가 편하자고, 어른이라고, 좀 배웠다고 아이에게 훈계를 하는 것입니다. 순전히 아빠 편하자고 그렇게 합니다.

     

    예를 들면 반야가 잠을 자기 전에는 늘 책을 읽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한권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5권 이상을 가져와서는 읽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오~ 맙소사.

    책을 5권 다 읽으려면 족히 30분은 더 걸릴 텐데 그걸 언제 다 읽어주지, 라는 생각에 한권만 보자고 설득을 합니다. 그리고 “반야야, 일찍 자야지, 내일 읽자.” 하면서 훈계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는 5권을 모두 읽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5권을 모두 읽어 주었죠. 아주 빠르게, 아빠가 아주 빨리 읽어 주었습니다.

    속독 아시죠. 맞아요. 바로 속독이에요. 웃기죠. 반야아빠 말입니다.

     

    사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데요. 한권을 읽더라도 아빠가 재미나게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잠이 들고 싶었던 것인데 전 그냥 소리를 내었던 것이죠. 스토리가 있는 동화책이 아니라 윙~하고 기계음을 낸 것입니다. 며칠 후부터는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는 이야기를 안 하고 그냥 자는 거예요. 순간 야호, 하고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잠시 후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많이 미안하더군요. 아이가 책 읽는 것을 체념한 것입니다. 아빠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죠.

     

    아이가 원했던 것은 아빠의 정성

     

    그것을 알아채고는 많이 미안하고 좀 슬프더라고요. “아빠가 뭐 이래” 자책을 하면서요. 그래서 아이에게 공을 들였어요. 책을 안보겠다는 아이에게 부드럽게 “아빠가 책 재미나게 읽어줄게. 어때?” 이렇게 몇 번 며칠을 시도한 끝에 책을 보겠다는 아이에게 이번에는 정말 제가 생각해도 즐겁고 재미나게 읽어 주었어요. 아이는 책을 읽는 내내 만족하는 표정이 하나 가득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물어보았어요. “반야야, 아빠가 책 읽어주는 거 재미나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책도 읽고, 이 책도 읽고, 이 책도 읽고 다 읽어줘” 양손가락을 쫙 펴고 10권 다 읽어 달라고 합니다. 오~ 맙소사.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저도, 저의 소리를 듣는 제 귀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부터는 제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한권이 다 끝나가기도 전에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죠.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요. 귀가 있어도 들을 귀가 있어야 하고 눈이 있어도 바로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이가 원했던 것은 아빠의 정성이었던 것이죠.

     

    ▲제 눈썰매 어때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유치원이 휴교를 했어요. 큰 저수지 지나서 큰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유치원차가 못 들어왔어요. 덕분에 반야는 재미없는 아빠랑 온종일을 보냈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반야가 “아빠, 썰매 타러 가자” 미끄럼틀을 떼어서 즉석 썰매를 만들었어요. 뒷산에 올라가서 신나게 탔어요. 반야아빠 최고랍니다.
     

    아이와의 관계를 위한 투자

     

    그런데요. 재미난 것은 반야 엄마가 저와 똑같이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녁시간에는 주로 반야 엄마가 반야와 놀아 주는데 아내도 일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하니까 아이의 이런 저런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만만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반야가 아빠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책을 5권이나 읽어 달라고 하는 거예요. 아내는 놀라는 표정으로 한권만 보자고 이야기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죠. 결국 아내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데 그 방법이 아빠인 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가도록 책을 읽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 사이에 되도록 끼어 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인데요. 아내가 며칠 후에 제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반야가 요즘은 책을 읽어 달라는 이야기를 안 하네?”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당히 진지하게 아내의 질문에 답을 했어요.

    “아이의 마음을 읽어 봐, 반야가 원하는 것은 5권이 아니야, 한권을 읽더라도 날아 다니게 읽지 말고 재미나게 읽어봐. 그렇게 한 번 해봐. 내가 들어봐도 당신이 읽는 책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바람이 날아가는 거랑 같아”

    아주 진지하게 멋있는 목소리로 한 수 전달을 했습니다. 반야아빠 멋지죠.

     

    아내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고는 그날 저녁 부터는 제 이야기대로 정성껏 책을 읽어 주더군요. 아이가 원하는 것은 엄마 아빠의 관심이었습니다. 요즘 우리 부부가 청소하고 책 읽고 있는 동안에 아이는 혼자서 책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소리 내어서 책을 읽어요. 글자를 벌써 다 알고 있냐고요? 그렇지는 않고요. 그림을 보면서 엄마 아빠가 읽어주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 책을 읽는 겁니다. 즐겁게 말입니다.

     

    이게 농사짓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겠지요.

    농사도, 아이를 기르는 것도, 마음은 정성이고 이치는 기술과 같은 것이겠지요.

    아이를 통해서 이렇게 공부하며 살아갑니다.

    전 이것이 앞으로 몇 십년 동안 아이와의 관계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요. 투자치고는 돈도 안들이고 굉장히 저렴한 편이죠.

     

    법륜스님의 ‘엄마수업’ 이야기처럼 아이가 20살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는 돌보고, 지켜보고, 이해하는 일의 연속일 것입니다. 조금 더 어릴 때 시작하는 아이와의 교감은 정말이지 투자할 만한 일입니다. 강추 권합니다. 아이에게 설득과 훈계보다는 들어주고 이해하는 시간이 효과 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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