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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회]마을은 관계의 그물망
    정상오 / 2012-12-11 11:52:08
  • 어제는 눈이 정말 많이 왔습니다.

    이곳 들꽃마을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많은 눈을 맞이했습니다. 눈이 오는 풍경은 백만 불짜리인데 눈을 치우는 내 모습은 이곳의 삶이 그대로 ‘생활’임을 실감케 하고 있습니다.

    눈이 그칠 때부터 옷을 두툼하게 입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빗자루에 눈 치우는 삽을 들고 집 앞부터 시작해서 마을 입구까지 깨끗이 눈을 치우는 것입니다. 마을 전체 길이가 200여 미터 가까이 되니 혼자서 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마을에 있는 식구들과 함께 눈치우기를 했습니다.

     

                                    ▲일본의 삿포로가 부럽지 않다고 합니다. 마을에 눈이 가득 쌓였습니다. 아파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풍경입니다. 눈이 정겹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고, 어른들은 눈을 치우고, 눈이 하나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관리실에서 아저씨들이 열심히 치워주시고 제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우리 집 차에 있는 눈을 털어내고, 아파트 현관 정도만 치우던 것과는 다르게 집 앞마당, 마을 주차장, 마을길들을 손수 치웠습니다.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어른들은 눈을 치우면서 수다를 떨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분들을 생각해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들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아이들도 함박눈을 맞으면서 눈을 굴리고, 굴려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이 어린 시절에 제가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빠 빨리 와, 나 울고 있어!”

     

    마을살이는 참 해볼 만한 일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눈을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손끝이 저리고 시렵지만 내 집 앞마당과 마을의 공동 주차장, 길을 치우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족이 마을의 구성원임을 오늘 실감하게 됩니다.

    반야는 동네 오빠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망가트려서 오빠한테 혼이 나고는 신나게 울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우는 지 이렇게 외치는 듯합니다. “아빠 빨리 와, 나 울고 있어! 얼른 와 봐”. 마을입구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저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모두 듣고는 “반야가 우나 보네” 할 정도였으니까요. 아이도 동네에서는 맘껏 크게 웁니다. 그게 참 좋습니다. 맘껏 크게 울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는 것이요.

     

    그거 알고 계세요?

    아이들도 자기를 이해해 주면 어른들을 존중해 주는 것을요? 이것이 육아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이라는 생각이 드는 계절입니다. 전 지난 730일간 몇 번이나 아이를 존중해 주었을까요?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에는 그저 돌보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순수한 생각이고, 좀 세게 이야기하면 어리석음이라고 할까요? 단편적인 역할만 생각한 것이죠. 때 되면 먹이고, 재우고, 똥오줌을 가려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이렇게 자기가 알아서 자라는 아이가 얼마나 있겠어요? 하지만 이제 말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 절대 없어요. 아이는 ‘손길, 눈길, 마음’ 이라는 ‘정성’ 속에서 자랍니다.

    그 돌봄과 사랑을 주면서 엄마 아빠도 무한한 신뢰를 아이로부터 받는 이치를 배우게 되는 것이죠. 굉장합니다. 이런 이치를 배우게 되는 것이 말입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아이로부터 돌봄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우치라고 부모가 되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 아빠들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다음에는 육아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가능하면 아빠도 100일 만이라도 엄마와 함께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성질 더러운 한명의 어른

     

    아이는 저절로 자랄 것이라는 굳센 믿음으로 육아를 시작했던 저는 오래지 않아 성질 더러운 한명의 어른을 만나야 했습니다. 누군지 아시죠? 바로 제 자신이었습니다. 아이가 맑은 웃음과 몸짓을 보여줄 때는 “아, 이것이 진정 행복이야” 했다가 울고, 보채고, 떼를 쓸 때는 “아,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녀석이 왜 이래~”이런 반응까지 아이의 웃음과 울음에 제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습니다.

    제 스스로 착하고 어진, 그리고 인자한 ‘나’ 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이를 통해서 인자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성질 고약한 ‘못된 나’를 만난 것입니다. 정말 당황스러운 순간들이죠. 처음에는 아이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이죠.

    문제라면 울고 보채는 꼴을 못 보는 내가 문제였던 것인데요. 그리고 아이가 울고 떼쓰도록 한 장본인이 바로 저였는데 철저하게 아이의 문제로 돌리는 나를 만나는 순간 정말이지 많이 부끄럽고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아이를 혼내고 달래면서 느끼는 어려움 보다는 이런 수준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내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것에 대해서요.

    그런데요, 지금은 편안합니다. “그래 내 수준은 이것 밖에 안 돼”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니 편안합니다. 내가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니, 아이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난 원래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 둘씩 고쳐나가고 보완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나를 인정하는 일이 참 중요한 일입니다. 또 아이와 호흡을 맞추어 나갈 때도 내가 부족한 것을 알게 되니 아빠의 수준을 조금 낮추어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게 되더군요. 나를 인정하는 일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저에게나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나니 아이가 떼쓰고 보챌 때는 다만 그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 둘, 셋,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아이의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보려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열어 보았습니다.

    이것은 외면이나 무관심, 포기와는 정말 다른 수준이겠지요. 그러기에 왜 아빠 육아를 시작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뭐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야아빠만의 어려움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육아가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죠. 아내에게, 아이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하고 원망하고, 내 기대의 수준을 높게 잡은 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일 뿐입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것 뿐입니다. 나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던 시즌에서 이제 나를 인정하고 육아를 하는 시즌이 열리는 것입니다. 재미나죠.

     

    ▲군감자 드세요. 반야네 구들방은 3일에 한 번 아궁이에 불을 넣는데요. 다시 말하면 3일에 한 번은 군고구마나 군감자를 먹을 수 있어요. 반야네 군고구마 드시러 오실 때는 꼭 ‘오늘이 아궁이에 불 넣는 날’ 인지 확인하셔야 해요 *^^*
     

    핵가족 이전의 시대 같으면 동네 이웃과 대가족의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며 풀어갔을 문제를 이제는 육아를 담당하는 한사람의 몫으로 남겨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아를 전담하는 베이비시터 같은 전문가의 역할이 생겼나 봅니다. 사실은 우리주변의 환경이 베이비시터인데 말이죠. 요즘 읽고 있는 ‘감정코칭’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감정의 배움터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의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축소되면서 정서적으로 나눌 교감의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구성원의 수

    1

    2

    3

    4

    5

    6

    7

    관계의 수

    0

    1

    6

    25

    90

    301

    966

                                                      ▲출처:최성애, (인간 커뮤니케이션), 1997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표를 하나 올릴게요. 관계란 혼자서는 성립이 안 되고, [엄마-아빠], [엄마-아이], [아빠-아이], [엄마와 아빠-아이], [아이와 아빠-엄마], [엄마와 아이-아빠], 이렇게 구성원의 수가 많을수록 관계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입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공감이 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표는 부족한 나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엄마와 아이를 넘어서는 관계의 그물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집은 작아도 마을은 크다

     

    지금 우리 들꽃마을에는 약 30여명의 마을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책에서 표를 보는 순간 “앗”하고 놀랐습니다.

    “우와, 그렇구나! 이건 정말 굉장한 걸”

    “마을은 관계의 그물망이고, 다른 말로 하면 마을은 관계의 배움터, 즉 학교라는 이야기야” 이렇게 관계에 대한 원리를 이해한 것이죠. 사실은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어른인 저도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위로 받고, 앞선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살핌을 받고 있거든요. 그래서 집은 작아도 마을은 크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표를 보고는 정리가 된 것이죠.

     

    예전의 마을들은 사라지고 달라진 주거문화로 인해 관계는 단절되고 육아라는 무대 위에 아이와 엄마 단 둘만 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소통과 기대의 에너지를 엄마와 아이 둘이서 서로 주고받게 되니 서투른 엄마 아빠들은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엄마는 아이만 바라보고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일도 문제가 되고, 얄궂게도 남편에게 그 화살이 많이 돌아갑니다. 화를 풀어야 할 곳이 필요한데 화를 풀 곳도 넋두리를 받아줄 곳도 없기 때문이죠.

    저는 우리 사회가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마을로 돌아가세요.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요.

     

    들꽃마을에 한 번 놀러 오세요. 재미난 이야기 더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추운 계절입니다.

    건강 살피시고요. 모두 모두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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