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는 엄마들의 육아모임인 ‘엄마 놀이터’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강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세상에 내가 엄마들 앞에서 강의를? 내가? 왜? 하필 나지?” 하지만 “엄마들에게 아빠 육아 이야기를 해달라고! 음 좋았어!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있지” 하며 흔쾌히 수락을 했다.
‘엄마 놀이터’에 가보니 나 말고도 두 명의 아빠가 더 나왔다. 이 날 난 아빠육아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이 있고, 아빠육아라서 겪는 어려움이 특별히 더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몇 가지 적어 보려고 한다.
육아를 하는 엄마 아빠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1. 배우자가 출근하고 아이와 단 둘만 남는 세상에서 겪는 외로움 비슷한 감정.
2. 어린 아이도 돌 볼 줄 모르는 나를 만날 때 우울해지는 감정
3. 아이와 싸우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
4. 배우자와 단 둘이 육아를 책임지는 분위기
5. 아파트라는 갇힌 주거공간에서 느끼는 독방육아
아빠육아라서 겪는 특별한 어려움은
1. 아빠는 젖이 없다. 아빠는 힘만 있지 아이를 달래는 강력한 젖은 없다.
2. 육아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사노동까지 덤으로 올 줄은 몰랐다.
3. 밥하고 빨래하고 반찬 준비하는 일이 어렵다.
4. 동변상련의 아빠육아를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번호를 붙여서 육아의 어려움을 몇 가지로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그렇지만 대체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빠들은 육아만 할 줄 알았는데 가사노동까지 덤으로 온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나도 가사노동까지 전담하면서 아내에 대한 불만이 많았었다. 그날 참여한 엄마들이 올린 글을 함께 공유하려고 한다. 아래 글은 엄마놀이터를 운영하는 해인이 엄마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육아아빠들과 이야기 축제를 벌였던, 마마테이블!
아빠들이 육아를 하며서 울고 웃었던 얘기들을 들으면서
같이 웃고 맞장구치며 가슴 뭉클하기도 했었습니다.‘
반야아빠의 이야기
반야는 아빠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게 미안해요.
어느 날 반야는 "아빠! 아빠가 없을 때는 엄마가 아빠고,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가 엄마야." 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저려서 울었어요.(모두들 울컥!)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아빠는 아무리 잘해도 엄마를 대신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엄마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존재로 완벽하거든요.
대신 아빠가 딱 3개월만이라도 육아를 해 보면 좋겠어요.
저는 3년 육아를 하면서 여성을 이해하고, 엄마를 이해하고, 아이를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아이와 친해진 것이 가장 갚진 소득이 되었고요.
예경아빠의 이야기
육아하는 아빠들이 갈 곳이 없어요.
함께 어울려 수다 떨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되면 좋을 듯해요.
엄마들은 절대 무리에 끼워주지 않구요,
그나마 할머니들이 곁을 주시는 것 같아요.(다같이 웃음)
육아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이 힘들 때가 있어요.
'엄마가 돈을 더 잘 버니까 아빠가 애를 보나보다'...란 심리를 읽을 수 있거든요.
외출할 때마다 "엄마는 어디갔어? " 란 질문을 반복해서 들을 때면 속이 상해요.
한편 아이가 둘이라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까 아내의 퇴근 시간만 체크하게 되어요.
올 때가 됐는데 늦으면 스트레스가 되구요.
엄마놀이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반찬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애기들 반찬 만들려면 정말 고민 많고 힘들어요.(다 같이 웃음)
믿고 먹일 수 있는 식사를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반찬도 싸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은규 아빠 이야기
육아하면 아이만 보면 될 줄 알았는데 실상 가사 일까지 포함 되었어요.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과 줄어들 지 않은 일들을 하다 보니 점점 짜증이 늘어나면서
아내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되더라구요.
짜증이 난다는 걸 알겠는데도 컨트롤이 되지 않았어요. (다들 공감)
이것이 육아우울증이라고 하더라구요.
빨리 아내가 돌아와서 은규로부터 자유롭고 싶고, 어떨 때는 맡기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생겨요.
또한 육아나 가사를 전담하는 여성들에게 많이 생긴다는 '건초염'이 제 왼손에 와서 더욱 힘이 들었어요.
육아를 하면서 친구 만나기도 쉽지 않게 되자 점점 '독방육아'를 하게 되었는데,
엄마놀이터가 수원에도 생겨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육아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밖에도 여러 가지 얘기들이 오고 갔고, 참가자들의 소감나누기도 이어졌습니다.
육아하면서 대화가 끊어져버린 부부사이!
엄마아빠가 함께 들으면서 서로의 처지와 상황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란 아쉬움도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육아란? 아이가 중심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 가족이 중심이어야 한다. 특히 엄마가 행복한 육아가 되어야 함을 다함께 공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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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덕분에 나는 참 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아빠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추억보다 훨씬 더 많다. 아이와 함께 했기에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6살이 된 반야와 아빠는 친하다. 당연히 친근할 수밖에 없다. 아기 때부터 함께 공유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엄마만큼 아빠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다. 하지만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연습은 충분히 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만족한다. 예경이 아빠, 은규 아빠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보다 잘 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아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 동네 아이들은 요즘 바쁘게 뛰어 다닌다. 서로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여 다닌다. “삼촌 우리 집 문을 열면 반야네 집이면 좋겠다.”, “아빠 언니네 집이 너무 멀어” 그런 아이들을 보면 고맙기 만하다.
가정(家庭)이라는 글자가 있다. 집과 뜰이라는 조합어다.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니
‘가정(家庭)은 생활을 함께 하는 부부, 부모, 자녀 등 가족의 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뜻한다. 또한 가족 간에 생활을 공유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가정은 주거를 기반으로 하며, 개개의 가정은 각각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라고 되어 있다.
가정생활이라고 하면 집과 뜰의 생활이라고 풀어서 쓸 수 있다. 요즘은 이 글자가 이해가 된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 언니 오빠, 삼촌 이모, 마을이라는 집과 뜰에서 자라고 있다.
독방육아가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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