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지난 2월 14일. 여느 때 같으면 초콜릿을 주고받았을 발렌타인데이 인대, 올해는 갑자기 인터넷과 SNS상에 그날이 바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임이 알려지면서 숙연한 분위기였다. 일본에서는 연일 과거사 왜곡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는 일본 관방장관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때마침 중국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며 하얼빈에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동아시아 3국 한․중․일의 팽팽한 긴장관계는 끝이 없는 듯하다.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일반 어머니들이 자식의 죽음을 대하면서 애태우는 구구절절한 내용과는 차원이 다른 의연함과 단호함이 묻어나는 내용이다. 실제로는 편지로 전한 것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를 면회 간 두 아우를 통해 항소하지 말 것을 권하며 전한 말이라 한다. 조마리아 여사는 만주와 연해주 등을 전전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만큼 대범하고 강인한 성품을 지닌 어머니였다. 그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어머니상
조마리아의 편지는 2013년 5월 무한도전에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21세기 개인주의 시대에 어느새 내 가족, 내 몸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했던 것이다. 자신의 목숨보다 나라와 민족의 해방을 위해 투신했던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는 뭔가 달랐던 것이다. 이는 조마리아에 국한된 모습이 아니다.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김의한의 부인 정정화 등 독립운동가의 어머니와 부인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줄곧 현모양처의 어머니상과 아내상이 강조되었고 그 대표적인 인물로 신사임당이 등장하곤 하였는데, 왜 진작 이런 여성들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정말 롤모델로 삼아야 할 어머니 상은 바로 이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5만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이 아니라 조마리아와 같이 대의를 위해 헌신한 굳건한 어머니가 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가족의 절반이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같은 ‘한’명의 독립투사가 나오기까지는 여러명의 지원자가 필요하다. 만주로 이주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경우는 특히 그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서중석의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이라는 연구 자료에 의하면 서간도로 망명을 떠났던 가족들 ‘절반이 독립운동가’라고 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이주하여 낯선 곳에 정착하였고 생계활동이 곧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후방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여성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남편과 아들들을 뒷바라지할 뿐 아니라 생계와 육아, 독립자금 모금까지 도맡아야 했다. 그녀들을 과연 독립운동가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넘어가야 할까?
현재 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는 남성이 13,000여명인데 비해 여성은 고작 234명 뿐 이다. 남성의 2%도 안되는 숫자이다. 한명의 남성 독립운동가 뒤에는 어머니, 부인, 며느리, 딸 등 협력했던 여성들이 적어도 두 명 이상은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우리 역사의 이면에서 드러나지 않았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위상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지난 3월 1일 ‘가족사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발족하였다. 여권신장을 외치며 여성 대통령까지 탄생한 대한민국에서 여성독립운동가가 겨우 234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다.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의 결과이다.
너무 늦었다. 여성독립운동에 관해 증언해줄 당사자는 물론 그 후손들도 거의 다 사망했고 기억도, 자료도 거의 사라졌다.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의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기란 너무나 요원한 길인 듯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인 것은 분명하다. 여성계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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