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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회]완벽한 육아? 경험하는 육아!
    정상오 / 2013-03-11 05:54:11
  • 때가 있고, 흐름이 있는데 내 성질대로 조급해하고, 힘으로 일을 하면 다치거나 몸살이 나고 일이 매끄럽게 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하루 종일 궁리 하는 것 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하고자 하는 일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것도 마을에서 배우고 있다. 겨울을 맞이해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땔감을 자르고, 주중에 짬을 내어 몇 시간씩 온실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은 생각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움직임’ 이라는 것을 살림살이와 육아에서 배우고 있다.

     

    며칠 전에 겨울 땔감을 준비하면서 참나무 둥치에 내 오른손 검지를 심하게 찧었다. 아픈 것을 잘 참고, 감기에 걸려도 약을 잘 안 먹는 나는 아픈 손을 바라보며, 이러다 괜찮아 지겠지 하고 손을 몇 번 주무르는 것으로 치료를 마쳤는데, 한 달이 더 지난 지금도 손가락이 아프고 잘 아물지 않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서 그런지, 겨울이라서 그런지 좋아지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병원에 다녀와야겠다.

     

    각각의 손가락이 아니라 하나의 손이다.

     

    손가락이 아프고 나서야 내 검지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검지를 잘 사용하지 못하니 이런 저런 불편함이 있는데, 가운데 손가락과 중지, 약지 손가락 그리고 왼손이 검지를 대신해서 역할을 많이 해준다.

    물건을 잡을 때도 검지 대신 셋째와 넷째가 잡게 되고, 어떤 일을 하려고 준비할 때도 왼손과 다른 손가락들이 “검지 너는 잠시 쉬어, 넌 아프잖아”하는 것처럼 알아서 손을 쉬게 해준다.

    손가락이 아픈 경험을 하면서 나의 손가락도 개체 하나씩만 보면 별개의 손가락으로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손가락을 위해 다른 손가락들이 움직여 주는 것을 보고 손을 별개로 인식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나와 아내, 반야도 각각의 손가락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하나의 손과 다르지 않은 가족이다. 아이가 아플 때 아이의 아픔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지고 가끔 눈물도 글썽거리는 것은 내가 아이와 다른 존재가 아니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존재란 어떤 것일까?”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게 한다. 낙엽들은 땅에 가라앉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추운 한겨울 밤을 보내는 계절이다. 정말 추운 혹독한 계절이다. 너무 추워서 우리 동네 쥐들이 마당에 얼어 죽어 있고는 한다. 정말 춥다.

     

    ▲아이들도 마을 간판 이야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답니다. 새봄이 오면 마을에 간판을 설치하려고 한다. 이사 와서 1년 가까이 마을 간판 없이 지내고 나니 이런 저런 불편함이 있었다.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그렇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않고 마을 안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고 해서 간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낙엽이 나무였고 가지도 나무인데 나는 늘 가지 따로, 낙엽 따로 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사는데 익숙해져 있으니 참 고만 고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육아하면서도 아이가 울고 때를 쓸 때는 “이 녀석이 왜 이래, 떼쓰지 않으면 좋겠다.”라면서 핀잔을 주고, 아이가 까르르 웃고 활기차고, 말을 잘 따라 줄 때는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사랑이 그득한 몸짓으로 아이를 안아주는데, 사실은 우는 아이 따로, 웃는 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아이가 그 아이일 뿐이다. 따로 보는 아빠의 고질적인 오랜 습관으로 아이를 나누어 보고 있는 것뿐이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아이와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일

     

    겨울이 깊어지면서 참 많이 느낀다.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하던 건축 일을 얼추 정리하고 마무리 못한 일은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부탁하고 시작한 아빠육아. 잘 모르면서 부모로서의 자격 하나로 전전긍긍하며 시작한 아빠육아는 이제 내 삶의 한 켜가 되었다. 1년만 하기로 하고 시작한 아빠육아가 나무의 단면에 새겨진 나이테처럼 두 개의 동그란 원을 벌써 만들었다.

    구들방 아궁이에 넣는 참나무의 나이테를 보면서 벌써 두해를 아이와 함께 보낸 흔적이 동그랗게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아이와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마치 동그란 나이테가 밖을 향하지 않고 안으로 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참나무의 나이테처럼 안을 향하는 것이, 이렇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아이와 만나고 남편으로서 아내와 만나고 있는 것임을 살펴본다. 가끔 “난 내 수준에서 정성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데 내 마음 씀씀이가 왜 이것 밖에는 되지 않을까” 하고 자책하는 날도 많이 있다. 하지만 자책도 과하면 우울해지니 멈춘다. 난 완벽하지 않으니까 다만 육아를 내 수준에 맞추어서, 아이에게 맞추기를 노력하면서 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를 돌보게 되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학적인 반응물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리트머스 종이와 같은 이치라고 할까? 내 마음에 드는 것이 나타나면 환하고 기분 좋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면 어둡고 싫다하는 반응을 한다.

     

    며칠 전에는 반야가 뾰족한 0.5mm 볼펜을 집어 그림을 그리는데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의 손에서 내 눈이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볼펜을 들고 언니 오빠들 틈으로 들어갈 때 까지도 난 눈을 떼지 않았다. 볼펜을 뺏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기에 그냥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때 다연이가 반야의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반야는 언니가 자기 의자에 않은 것을 보고는 “내 의자야, 저리가” 이러면서 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볼펜을 든 손을 언니의 허벅지에 내리친 것이다. 다행히 바지가 두꺼워 상처가 나지 않고 볼펜 자국만 나기는 했지만 이미 언니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참는 모습이 역력했고 반야는 자기 손에 있는 볼펜이 언니를 다치게 할 뻔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화를 내고 있었다. 난 속으로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렇게 생각했지만 불과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럴 때는 뒷수습을 차분하게 하고 아이들의 감정이 누그러질 때까지 거드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이쯤에서는 어른이 참견할 일이 벌어진다. 그 자리에 없었다면 모를까, 다투는 아이들의 자리에 함께 하고 있으면 참견할 일이 생긴다. 그런데 조정을 해주어야 할 어른인 내가 가끔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얼마나 조정을 해야 하는지 경중을 저울질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오늘은 언니가 상처를 입을 뻔 했고, 참고만 있기에 내가 참견을 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반야가 내 딸이고 반야네 집이라는 장소적인 잇점 때문에 다연이가 참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반야에게 “이건 위험한 행동이야, 언니가 다칠 뻔 했잖아, 뾰족한 것으로 때리는 건 잘못된 거야.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마. 언니에게 사과해” 육아는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번일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니 아이를 혼내야 했다.

     

    조금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다리를 찔리고도 가만히 있는 다연이에게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이럴 때는 동생이거나,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라도 상관없이 위험한 일이니까 혼을 내주어야해, 그래야 잘못된 것인 줄 알고 다음부터 주의를 할 수 있어. 동생들에게도 확실하게 의견을 이야기해야 동생들이 주의를 할 수 있어. 삼촌도 미안하다. 볼펜을 잘 치웠어야 하는데”

    훌쩍거리던 반야는 잠시 후에 언니에게 사과를 했다.

    언니도 반야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아이들의 세계를 살펴보고 있으면 종종 참견을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그럴 때 힘에 의한 제지도 종종 있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사실은 내가 많이 불편해진다. 이런 불편한 마음도 알아가고 경험해 가는 것이 육아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조금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다만 상황에 맞추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동을 가지고 체벌을 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을 가지고 아이의 성격을 나무라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수치심을 주어선 안 된다는 것이 육아를 통해 얻은 경험이다.

    이렇게 매일같이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아이의 눈과 손, 몸놀림을 주시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부모도 아이도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것이다.

     

                                   ▲반야 친구랑 3개월 만에 친구들을 만났어요. 사는 동네는 다르지만 3개월에 한 번씩 만나서
                      어른들이 밥을 먹으니 아이들은 저절로 친해집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고맙게 자라고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아이를 육아하는 과정은 정말 부모가 되어가고, 부모가 성장하는 계절이다.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살펴본다고 할까?

    그러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손가락 하나가 손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경험을 쌓고 쌓아서 나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 먼저 부모로서의 자격을 부여받고 급하지 않게, 생각이 아니라 생활을 하면서, 천천히 경험을 하면서 부모가 되어간다. 난 어린 시절에 우리 부모님은 무엇이든지 다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그 자리에 앉아 보니 우리 부모님도 나 때문에 참 많이 시행착오를 했던 것을 알게 된다.

    완벽한 부모가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부대끼며, 느끼며, 서로 맞추어 가며 부모가 되어가는 추운 겨울이다.

    오늘은 아궁이에 불을 넣는 날인데 감자를 구워서 저녁에 먹어야겠다.

     

    며칠 전 아침에 쓴 글인데 느낌이 좋아서 시로 만들어 보았다. 아직 제목은 없다. 


    나는 다만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에게서 듣고, 느끼고

    내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익숙하지 못한 길이기에

    종종 어려움과 슬픔, 고통이 찾아옵니다.

     

    나는 아내와 아이에게

    가족은 성공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도착하는 과정에 있는 것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완벽한 무엇이 아니라

    걸어가는 경험의 길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느끼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완벽한 그 무엇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없더군요.

    다만 할 뿐이고

    다만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아이를 통해서 아내를 통해서

    그리고 점점 섬세해지는 나의 감각들을 통해서

    경험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다만 배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이도 아내도 마을도 나의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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