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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회]웅녀, 이브, 판도라 III
    2012-10-23 01:59:14
  • -곰의 여성으로의 변신(The Bear's Transformation into Woman)

     

    웅녀에 대한 신화는 본래 웅녀의 아들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시조이기도 한 단군의 이름을 붙여 ‘단군신화’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 신화가 ‘단군신화’가 아니라 ‘웅녀신화’라고 불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단군이 아니라 웅녀가 이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신화의 중심행동은 그녀로부터 일어난다. 나는 곰이 여성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웅녀신화’의 중심테마라고 믿는다. 지금부터 나는 웅녀의 변신이 일어나는 신화의 두 번째 부분에 집중할 것이다.

     

    단군신화가 아니라 웅녀신화다

     

    여성의 몸은 원시인류에게 ‘비밀’을 담고 있는 현장으로서,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을 던진다.생명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새 생명의 전달자이며 동시에 기적과도 같은 변신(임신과 출산)의 주체로서 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성인으로 입문하는 중요한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필사적인 남성판 인간창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창조설에서 흔히 보여지듯이 한국판 최초의 인간창조 이야기도 여성의 출산능력을 왜곡하거나 부정했다는 측면에서 예외가 아니다.

     

    자 이제 신화에서 곰이 여성으로 변신하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하늘신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고 그것을 먹도록 지시하였다. 한국사람들에게 ‘쑥’과 ‘마늘’은 둘 다 식용 음식이기도 하고 치료용 약재이기도 하다. 민속적으로 쑥은 여성들의 생리불순에 대한 치료약으로 알려져 있다. 쑥은 또한 악(惡)을 몰아내는 정화효과도 있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한국사람들은 단오절(음력 5월 5일)이면 악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대문에 쑥을 걸어놓곤 했다.

     

    한편, 마늘은 승려들에게 가장 금기시되는 식품 중 하나로 알려졌다. 불교경전에 따르면 마늘은 성적인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것과 연관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수련과정에 있는 승려들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식품이었다. 일반 대중적 차원에서도 마늘은 성적인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되기 위한 시련을 앞두고 있는 곰과 호랑이에게 명백하게 성적인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것과 관련이 깊은 이 두가지 특정한 식품을 먹으라고 지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들이 곰과 호랑이를 성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신령한’ 약초의 도움으로 곰과 호랑이는 짐승의 상태에서 성적인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곰과 호랑이가 먹은 약초는 성적 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나는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인간이 되기 전에 미리 조치한 이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되려면 누구나 남자 또는 여자, 둘 중 하나의 성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1984년 중국 우하량(BC.3500-3000) 여신묘에서 발굴된 웅녀족 두상(출처:요녕성박물관)
     

    여성 통과의례의 흔적

     

    또 다른 현대의 신화학자 김열규는 곰의 변신과정에서 여성 통과의례의 흔적을 찾는다. 이들 통과의례의 기본적 목적은 아동기의 죽음과 성인으로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생물학적 생애주기를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있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고대 문화는 초기 단계부터 사춘기 통과의례가 일련의 의식행위들을 포함하는데 그 의식들의 상징은 투명하도록 분명하다: 통과의례들을 통해 입문자는 배아(embryo) 상태로 변모했다가 재탄생한다. 통과의례는 제2의 탄생과 같다. 통과의례의 행위들을 통해 사춘기 입문자는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동시에 문화적으로 깨어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궁으로의 귀환은 입문자가 오두막이나 괴물 옆에 혼자 고립되거나 또는 어머니대지의 자궁으로 정해진 신령한 장소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사춘기 통과의례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남성의 통과의례가 공동체에 대한 남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반면, 여성 통과의례는 주요한 초점이 성적, 생물학적 역할에 대한 그녀의 복종에 맞춰져 있다. 심리학자 조셉 헨더슨(Joseph Henderson)은 여성 통과의례에 대한 통찰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소녀와 여성들의 경우, 성공적인 통과의례의 진입을 향한 기본적 태도로서 복종의 테마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녀들의 통과의례는 시작부터 그들의 기본적 수동성을 강조하고 그 수동성은 생리주기를 통해 그들에게 부여된 자율성에 대한 신체적 제재로 더욱 보강된다.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생리주기는 실제적으로 여성 통과의례의 주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왜냐하면 깊은 의미에서 생리가 그녀에게 주어진 생명창조의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일깨워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남성이 공동체 생활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에 자신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꺼이 자신의 여성적 기능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여성의 통과의례와 신화 속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 시련을 거치는 곰과 호랑이의 의례에는 확실히 유사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특정한 상징들은 반드시 한국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고 설명되어져야 한다.

     

    곰의 시련은 여성의 출산기능과 관련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지시했던 애초의 은둔기간은 100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을 획득한다. 여기에서 100일과 21일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화의 텍스트는 이 분명한 ‘불일치(discordance)'에 대해 어떤 설명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통과의례의 흔적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100일과 21일은 둘 다 탄생 의례와 관련해 아주 중요한 숫자들이다. 아들을 낳기 위한 100일 기도는 지금까지도 한국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의례다. 다양한 민담들이 아들을 낳기 원하는 여성들이 산에서, 절에서, 나무 아래나 또는 바위 앞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21일)’이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첫 번째 축일이다. 21일이 되기 까지 아이는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특별하게 표시된 새끼줄이 문위에 걸리면, 그것은 곧 출산신, 삼신할머니가 임하셨다는 의미이고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의미이다. ‘삼칠일(21일)’이 되면 표시된 새끼줄이 거두어지고 방문자들은 처음으로 아이를 보는 것이 허락된다. 따라서 21일은 세상에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기간이 된다.

     

    곰과 호랑이가 먹어야 했던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합한 수 또한 스물하나이다. 또 아이의 생후 100일에 열리는 ‘백일(百日)잔치’ 또한 아이의 첫돌과 함께 신생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의례이다. 따라서 100일과 21일 모두 한국의 탄생 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인간이 되기 위한 곰의 시련이 여성의 출산기능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불일치

     

    그렇다면, 왜, 곰은 환웅이 애초에 지시했던 100일이 아니라 단 21일 만에 여자가 되었을까? 만약 우리가 여기에 생물학적인 설명을 적용시킨다면, 비록 여성이 아들을 갖기 위해 100일 동안 기도하도록 ‘지시받더라도’ 그녀는 언제 임신하게 될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임신에 성공하더라도 그녀는 그것이 아들인지 딸인지 또한 결코 알지 못한다. 신화 속의 웅녀에게 임신과 태아의 성별 결정 또한 완전히 통제 불능이다.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환웅은 100일 기도를 지시할 수는 있지만, 그 또한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는 100과 21이라는 숫자 사이의 의도된 ‘불일치’로 여겨진다. 왜 21일인가? 다시 생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21일은 여성이 한달간의 생리주기 안에서 배란 후 자신의 임신을 알아챌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숫자의 ‘불일치’는 과학적으로 계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신화 텍스트는 곰과 호랑이가 남자가 되기를 원했는지 또는 여자가 되기를 원했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여기 또 다른 ‘불일치’(곰과 호랑이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는 측면에서)가 일어나고 이 ‘불일치’는 ‘갭(gap)'을 만들어 낸다. 페미니스트 학자 미키 발(Mieke Bal)에 따르면 ’갭(gap)‘은 텍스트에 나와 있는 정보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의문을 유발시키는 ’지점(spot)'이다.

     

    신화 텍스트가 말하듯이 곰이 특별히 여자가 되기를 원한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왜 곰은 여자가 되었을까? 따라서 여기서 질문은 ‘곰이 여자가 되기를 원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것으로 변한다. 이 질문에 대해 가능한 대답은 ‘화자(話者)’이다. ‘화자’는 누구인가? 이 신화 속의 ‘화자’는 고대 한민족의 집단적인 마음이다. 그러면 이 집단적인 한민족의 마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그 여부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단군 신화를 기록한 고대 한민족의 마음은 남성

     

    여성의 몸을 획득한 후에 “웅녀(熊女)는 자기와 혼인할 이가 없어 항상 단수(壇樹) 아래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여자가 된 곰이 첫 번째로 찾은 것은 결혼할 남자였다. 그러나 텍스트의 ‘화자’가 누구인지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하여 아이를 갖기 원하는 존재가 웅녀인지 아니면 ‘화자’인지 알지 못한다. 텍스트는 그녀의 기도를 들은 후에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니, 웅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변신을 위한 시련의 마지막 결과물을 얻는 이가 바로 환웅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늘의 신, 환웅 또한 웅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인간의 형상으로 자신을 변신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그 자신 “모든 변신을 규제하는” 신이기 때문에 그는 어둠 속에 갇히는 시련의 시기를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전체적인 변신의 총 과정 - 곰과 호랑이의 기도, 신령스러운 쑥과 마늘을 먹으라는 환웅의 지시, 햇빛을 보지 않고 동굴 속에 갇혀 있기 - 등은 모두 환웅의 인간 남자로의 최종 변신을 겨냥한 것이었다. 따라서 텍스트의 주체인 화자는 이제 신화 속의 남성인물인 환웅과 거의 일치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신화를 서술하고 기록한 고대 한민족의 마음은 남성인 것으로 유추된다.

     

    만약 우리가 현실에서 동물이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고대 한국에서 여자로 변신한 곰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피와 살을 가진 실제의 여성은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이 되기 위한 곰의 은둔의 시련 또한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 대신 실제로 일어난 것은 햇빛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혼인의례였을 것이다.

     

    곰이 여자가 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곰이 된 것

     

    하늘신, 환웅은 웅녀에게 곧 아들을 낳게 될 여자로 변신하기 위하여 100일 기도를 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므로 100일 동안의 은둔의 숨은 의미는 곰이 여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아들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고대 한민족의 원형적인 마음은 출산하는 여성을 소개하기 위한 도구로 웅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만약 우리가 자크 데리다의 개념 ‘오버런(overrun)'을 여기에 적용시키면 전체적인 변신의 총 과정이 뒤집어지게 된다. 곰이 여자가 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여자가 곰이 된 것이다.

     

    텍스트는 결혼 직후 “웅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말한다. 아이는 왜 여자아이, 즉 딸이 아니었을까? 왜 아이는 아들이어야만 했을까? 아들 선호의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아이는 혈통제 가계의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아들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화가 형성되었던 고대 한국 사회에 이미 혈통적 가부장제 질서가 확립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여성의 성숙을 첫 번째 동물의 형태(곰)에서 두 번째 인간 여자(웅녀)로의 이행으로 표현한 것은 여성이 출산하기 위한 존재로 안전하게 사회에 결합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곰의 인간여자로의 변신은 동시에 두가지 재탄생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나는 동물의 몸이 인간의 몸으로 바뀌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후자가 출산하기 위한 여성의 몸으로 성숙하는 것이다. 신화 속의 남성인물인 하늘신, 환웅의 지휘로 이 동시적인 곰의 재탄생 과정이 모두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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