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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회]웅녀, 이브, 판도라 I
    2012-10-09 03:05:26
  • -단군신화에 나타난 한국여성의 분열


     

    이 논문은 제가 1990년 뉴욕시립대 대학원(CUNY Graduate Center) 여성학(Liberal Stuidies 여성학 전공) 석사 논문으로 쓴 글입니다. 이번 10월 이프 여신스터디모임에서 ‘웅녀, 이브, 판도라’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글을 앞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여러분들을 위하여 ‘단군신화에 나타난 한국여성의 분열(Divided Women in the Korean Origin Myth)’ 그 첫 번째 원고를 소개합니다. 각주는 원고분량상 삭제하였습니다. 문의사항은 이프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 유숙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  ▲출처:오마이뉴스

     

    1. 서론 (Introduction)

     

    기념비적인 그녀의 저서, ‘제2의 성(The Second Sex)’에서 시몬 드 보봐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One is not born but rather becomes a woman.)”①는 그 유명한 말을 했다. 여성은 세상의 거의 모든 사회에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대접받아 왔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에 대한 나의 페미니스트적 탐구가 시작된 이래 나는 우리, 한국여성들이 어떻게 ‘한국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매우 궁금하게 여겨왔다.

     

    그들은 어떻게 ‘한국여자’가 되었는가? 나는 누구인가? 그녀는 누구인가? ‘한국여자’라고 불리는 그 여자는 누구인가? 한국사회가 한국여성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 오래 의문을 품어온 끝에 나는 ‘한국여자’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는 ‘한국여자’의 기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여자’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침내 나를 최초의 한국여성 ‘웅녀(단군신화)’에게로 안내했다.

     

    신화의 세계는 상상력을 위한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고 한국사람들의 원형적인 창조정신 또한 거기에 깃들어 살고 있다. 단군신화가 한민족의 기원을 다루고 또 국가로서 고조선의 건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역사학자, 신화학자, 고고학자, 문학평론가, 유물론자 등 등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단군신화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을 시도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아직까지 단군신화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이전의 연구들이 각자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단군신화에 숨겨진 대부분의 의미들을 해독했지만 나의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보자면 결정적인 비밀은 아직 풀려지지 않은 것 같다. 신화는 우리에게 가장 최초의 남녀관계를 얼핏 보여 주며 거기에는 신화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의 상황과 환경뿐 만 아니라 그 뒤에 영향을 미친 시간에 대해서도 중요한 조건들이 존재하고 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중시하는 것은 이 신화의 원래의 의미를 밝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신화로 부터 옛 고대 한국인들의 젠더관계를 추론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한 8개의 장으로 나뉘어 진다. 1장 서론에서는 내가 왜 ‘웅녀’에 대해서 연구하게 되었는지 개인적인 이유를 밝힐 것이다. 이 신화의 역사를 다루게 될 2장에서는 신화의 역사적 맥락, 예를 들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어떤 형태로 전달되었는가를 검토해볼 것이다. 나는 같은 장에서 이 신화에 대한 이전의 연구들을 간략하게 점검할 것이다. 3장에서는 이 신화를 해석하는 나의 방법론, 즉 나는 왜, 어떻게 이 신화에 대한 페미니스트 해석을 할 것인지를 규정할 것이다. 4장에서 나는 이 신화의 남자주인공인 환웅과 그의 아버지 환인, 그리고 환웅의 아들 단군 등 남성인물들에 집중할 것이다. 이 신화에 등장하는 3대의 남성인물들을 검토함으로써 나는 한국 문화의 젠더 체계 확립에 대한 단서를 찾기를 기대한다.


    5장의 주요 주제는 신화 속에 여성으로의 변신이 될 것이다. 나는 곰의 여성으로의 변신이 이 신화의 중심 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도, 약초 먹기, 햇빛 보지 않기, 동굴 속 은둔 기간과 같은 여성변신의 요소들을 검토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여성변신의 요소들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여자’가 만들어지는 한국적 젠더형성의 방식이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6장에서는 인간으로 변하는데 실패한 호랑이의 섹슈얼리티를 검토하고 호랑이의 실패의 숨겨진 의미를 찾을 것이다. 이 신화를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호랑이의 존재를 간과하고 그 결과 호랑이에 대한 토론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신화를 이해하는데 특히 젠더관계에서 신화 속 호랑이의 상징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호랑이에 대한 내 해석은 이 신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급진적 해석이 될 것이다.

     

    마지막 7장과 8장 결론은 최초의 한국여성을 다른 2명의 유명한 최초의 여성들, 즉 히브리신화의 이브와 그리스신화의 판도라와 비교할 것이다. 나는 그들 보편적인 최초의 여성들과 웅녀를 비교함으로써 한국 젠더관계의 특수한 성격과 아울러 세계적 젠더형성문화의 공통적 특성 또한 살펴보기를 원한다.

     

    2. 단군신화의 역사 (The History of the Myth)

     

    다음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단군신화 관련내용이다:

     

    고기(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제석(帝釋)을 이름--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어 항상 천하(天下)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지금의 묘향산--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이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과 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예순여 가지 일을 맡아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았는데, 항상 신웅(神雄)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빌었다. 한번은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기(忌)한 지 삼칠일(三七日)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忌)하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자기와 혼인할 이가 없어 항상 단수(壇樹) 아래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니, 웅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이름을 단군(檀君) 왕검(王儉)이라 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An ancient record relates: "In olden times there was Hwan In. His son, [Hwan] Ung, born of his concubine, desired for himself an earthly life and wanted to be among human society. The father, knowing his son's intention, looked down upon the San Wei and the T'ai Po(the T'ai Po peak of the San Wei mountains?) and came to the conviction that his son might bring some benefits to mankind. The father gave his son three talismans and let him go. [Hwan] Ung descended with three thousand followers on to the top of Mount T'ai Po under the trees of the sacred altar which place was called the Divine Place. He had command over the Wind Noble, over the Lord of Rain and the Lord of Clouds. Therefore he had to attend to the planting of grain, the regulation of human life, of sickness, of punishment, and he had to judge good and evil; in short, he had more than three hundred and sixty affairs to direct."

     

    In this world he regulated all metamorphosis. At this time there were a bear and a tiger who lived together in a cave. They often prayed to the god [Hwan] Ung (bacause) they wished to be transformed into human beings. Ung gave them a miraculous wormwood stalk and twenty beads of garlic. He instructed them to eat this and not to see sunlight for one hundred days -- then they would easily acquire human form. These (herbs) the bear and tiger took and ate. They (following the instructions) remained in seclusion for three times seven days (only) and the bear acquired the body of a woman, but the tiger had not been able to abstain (from looking at the light) and so it was not possible foir him to obtain a human body. The bear-woman could find no one to marry, whereupon under the trees of altar she prayed to become with child. Hwan Ung changed his form and married her. She became pregnant and bore a son and his name was Tangun Wanggum.②

     

    신화속의 ‘웅녀’는 한국의 가장 오랜 역사서 2권 중의 한 권인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삼국유사’는 불교가 가장 융성하던 시기인 고려시대 1270년경, 일연이라는 이름의 승려에 의해 쓰여졌다.③ ‘삼국유사’는 주로 지금은 전하지 않는 다양한 옛 문헌들에서 인용한 내용들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대부분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가는 옛 한국의 민간신앙과 민속전통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가치는 엄격한 의미에서 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신화적인데 있다.

     

    ‘삼국유사’보다 약 125년 빠른 1145년, 고려 인종의 명으로 고위관료이며 학자였던 김부식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지만 ‘단군신화’를 언급하지 않는다. ‘삼국사기’는 분명하게 전설적인 성격의 설화들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사실체계에 맞춰서 쓰려고 시도한다.④ 따라서 한민족 최초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의 공식적인 역사서에서 빠지게 되었다.

     

    단군신화를 다루는 또 다른 고사서는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 뿐이다. ‘제왕운기’는 ‘삼국유사’보다 약 17년 늦게 1287년에 편찬되었다. 그러나 ‘제왕운기’에 기록된 단군신화는 기본적인 면에서 일연의 ‘삼국유사’ 줄거리를 따르지만 사뭇 다르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특히 인간여자로 변신하는 곰이 없고 대신 하늘에 있는 환인의 손녀딸이 인간여자가 된다.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여 사람되게 하여 단수신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게 했다.”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은 “(Hwan In) ordered a grand daughter to take medicine to become a grown-up. (The couple) married under the sacred tree and got the son, Tangun."⑤

     

    여기서 약은 그녀를 출산할 수 있게 만드는 약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남편인 환웅과 그의 아내가 된 환인의 손녀딸 사이의 관계는 근친관계다. 직접적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삼촌과 조카 사이인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여조상의 동물성을 제거하는 대신 이승휴는 근친간의 결혼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씨 조선의 유학자들은 ‘삼국유사’보다 ‘삼국사기’를 선호했고 대부분의 후세 역사가들은 1920년대까지 단군신화를 거론할 때 ‘삼국유사’보다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인용하였다. 그러나 신채호, 최남선같은 새로운 세대의 한국 역사학자들이 이 판단을 뒤집어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2권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평가했다. 삼국유사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웅녀에 대한 신화도 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신채호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삼국사기’의 중국중심적, 유교중심적 사고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신채호가 신화의 불평등한 젠더관계에 주목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삼국시대 초기 여성들이 존중받았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화에서 남자는 신의 현현이며 여자는 동물이 된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비하 때문에 삼국유사의 신화는 원래의 형태가 아니라 불교적 윤색의 산물로 보여진다.

    (while it is known that women were respected in the early years of the Three-Kingdom period, man becomes the incarnation of God and woman becomes that of an animal in the myth. Because of this degradation of woman, it appears that the myth in Samguk Yusa is not a purely original one, but a product of Buddhist embellishment.)"⑥

     

    비록 이 문제에 대한 신채호의 비판이 그의 신화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긴 하지만, 그가 신화 속의 불평등한 젠더관계에 대해 비판적 주장을 펼친 것을 아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1927년에 출판된 ‘삼국유사해제(三國遺事解題)’에서 최남선은 ‘삼국유사’를 한국의 과거를 발견하기 위한 더 좋은 자료로 평가했다. 역사에 대한 최남선의 접근법은 아주 흥미롭다. 그는 1930년대에 자신의 추종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는 가슴이 없는 과학으로 간주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민을 위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연구는 그 이면에 목적과 감정을 지녀야 한다. (History cannot and should not be regarded as a science with no heart because it is learning for the sake of the people. Historical studies should have purpose and emotion behind them.)”⑦ 


    거기에서 더 나아가 최남선은 한국의 샤마니즘과 단군신화를 연결시키면서 이 신화의 이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그는 단군신화를 샤만이 통치하던 고대 한국 사회와 연결지은 후에 한국의 국조인 단군이 실제로 고대 샤만통치자의 이름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이래로 이 해석이 대부분의 후대 학자들에게 인정되었으며 또한 단군신화 분석의 시발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른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백남운은 1933년 쓰여진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에서 이 신화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제시한다.⑧ 백남운에 따르면 신화는 인간 물질 세계의 반영이며 그 세계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이다. 신화도 예외가 아니다. 백남운은 단군신화 속에서 통치자 단군을 신성으로 끌어올림으로써 현실에서의 계급구분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발견한다.

     

    위에 언급한 단군신화에 대한 선구적 연구를 이끈 3명의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그 분야 전문연구의 3가지 방향, 즉 민족주의적 역사학자, 언어학적 민속학자,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자의 입장을 대표한다.

     

    한편, 한국 여성 역사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연구서로 1972년 이화여대 출판부에서 간행된 ‘한국여성사(韓國女性史 3권)’는 최초의 한국 여성인 웅녀신화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 신화는 ‘한국의 샤마니즘과 신화’라는 장에 언급이 되지만 단지 한국 민족의 시조로서의 단군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한국 여성 역사에 대한 이 3권의 책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여자대학의 특별위원회에 의해 집필되었지만 한국 여조상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심지어 여성들 스스로 쓴 여성의 역사 조차도 남성중심적일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창조(The Creation of Patriarchy)’를 쓴 페미니스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그녀의 책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기록되지 않은 과거와 기록되고 해석된 과거인 역사를 구분한다. 그녀는 말한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언제나 역사 속에서 주체이며 행동자였다. 여성은 인류의 절반, 또는 가끔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세상과 세상의 일을 남성과 동등하게 분담했다. 여성은 사회를 만들고 문명을 건설하는데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이었다. 여성은 또한 인류의 과거를, 세대를 연결하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문화적 전통으로 변화시키는 집단적 기억을 보존하는데 남성과 함께 했다. 이러한 구전 전통은 시나 신화에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그것들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창조하여 민속전통이나 미술, 의례 등에 보존돼 남아있는 것이다.

     

    Like men, women are and always have been actors and agenrs in history. Since women are half and sometimes more than half of humankind, they always have shared the world and its work equally with men. Women are and have been central, not marginal, to the making of society and to the building of civilization. Women have also shared with men in preserving collective memory, which shapes the past into cultural tradition, provides the link between generations, and connects past and future. This oral tradition was kept alive in poem and myth, which both men and women created preserved in folklore, art, and ritual.⑨

     

    그녀에 따르면 ‘역사 만들기(history-making)’는 문자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돼 해석과 설명 의 과정에 여성의 제외로 결과한 역사적 창조물(historical creation)이다. 승려든지, 왕실관리든지, 관료든지 또는 전문학자든지 간에 역사가들은 기록될 사건들을 선별했다. 아주 최근까지도 이들 역사가들은 남성들이었으며 그들이 기록한 것은 남성들이 행동하고, 경험하고,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것들이다.

     

    따라서 인류의 기록되고 해석된 과거 기록은 부분적 기록에 불과할 뿐이고 그것은 왜곡된 것이다.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서(In order to write a new history worthy of the name)" 러너는 주장한다. ”우리는 모든 여성의 역사적 경험의 복합성에 꼭 맞는 단 하나의 방법론이나 개념틀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we will have to recognize that no single methodology and conceptual framework can fit the complexities of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all women.)"⑩

     

    3. 페미니스트 독해란 무엇인가? (What Is Feminist Reading?)

     

    이 글의 시작에 나는 이 신화에 대한 페미니스트 독해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페미니스트 비평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내가 ‘독해(reading)'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나의 독해가 이 신화를 읽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나는 해체론적 입장을 취하고자 한다.

     

    하나의 텍스트를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읽는다는 것은 그 텍스트에 숨겨진 성적인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게끔 강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비평을 한가지 카테고리로 규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 비평의 목적과 실천의 다양성은 개방성(openness)과 복수성(plurality)을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⑪ 페미니스트 비평은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해체주의 등 여러 가지 산만한 전략에 의지한다. 나는 해체주의적 독해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해체주의가 페미니스트 분석에 도움이 되는 확실한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성간의 대립이 생물학적 사실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폭로하는데 도움이 된다.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제2물결 페미니즘과 해체주의의 부상은 1960년대 서구문명의 역사적인 위기와 궤적을 같이 한다. 그들은 서구사상의 근본을 형성하고 생산하는 기본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의식(consciousness)’과 ‘정체성(identity)’ 그리고 ‘이성(reason)’과 ‘논리(logic)’의 구조 등 모든 것이 분석의 밝은 빛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서구문명의 재점검과 관련해 라캉, 데리다, 푸코, 드뢰즈, 료타르같은 새로운 세대의 사상가들이 아주 인상적인 일련의 작업들을 내놓게 되었다. 비록 그들의 이론이 서로 아주 다르긴 하지만 그들은 공통적인 유사점 또한 공유하고 있다.⑫

     

    첫째로 인간 주체(human subject)에 대한 비판이 있다. 여기서 ‘주체(subject)'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개인(individual)'과 아주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 르네상스시대부터 유래한 ‘개인’이라는 용어는 인간이 ‘자유로운 지적 행위자(free intellectual agent)'라는 사실과 인간의 사고 과정이 역사적 또는 문화적 환경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주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인간 현실을 ’구성체(construction)'로 파악하도록 돕는다. ‘주체’라는 카테고리는 ‘의식(consciousness)'과 동의어인 '자아(self)'라는 개념에 의문을 품는다. 그것은 ’의식‘을 '해체한다(decentres)'.

     

    둘째로 그들은 ‘역사주의(historicism)'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그들은 역사에 전반적인 패턴이 있다는 개념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역사에 필연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따라서 인간 역사의 과정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성적인 방법으로 예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가 그 전형적인 사례인 ’역사 결정론(historical determinism)'같은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푸코(Foucault)는 진보라는 개념이 없이 역사에 대해서 서술한다.

     

    셋째로 ‘의미(meaning)'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들은 텍스트와 독자간의 상호작용을 생산성으로 파악하며 강조한다. 그들에게 텍스트의 독해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는 어떤 무언가를 생산하는데 있다. 독해자들은 이제 더 이상 텍스트나 저자의 ’소박한 하인(the humble servant)'이 아니다. 대신 그들은 저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때로는 실제로 의미를 생산하고 창조해낸다. 다른 말로 하면 독해는 생산물에 대한 수동적인 소비로서의 지위를 잃고 하나의 ‘공연(performance)'이 된 것이다.

     

    한편, 그와 같은 시기에, 페미니스트들도 역사와 문화, 사회에 끼친 ‘젠더(gender)'의 영향을 폭로하고 설명하는 문화적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젠더 개념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생물학적 성차와 사회적 성차를 당연하게 여기는 동일시 현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고발하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서구의 페미니즘은 마침내 여성성과 출산의 생물학 사이에 고착돼있던 보편적 연관성을 해체할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 비평의 임무는 남성중심주의를 폭로하고 해체하는 것이다. ‘타자의 철학(philosophy of the Other)'으로서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권위의 생각, 바로 그 자체를 거부해야만 했다.⑬ 그리고 그 일은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방법으로 상당히 수월하게 되었다. ’해체주의(deconstruction)' 개념은 새로운 방법의 ‘문제삼기(problematizing)'를 대변한다. 해체주의 프로젝트는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대립관계를 그대로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립한다는 그 생각 자체와 거기에 의지해 형성된 정체성의 개념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다. 데리다가 실천하는대로 나타나듯이, 이 텍스트 또는 저 텍스트에 적용시킬 수 있는 그런 특정한 해체주의적 ’방법(method)'은 없다. 단지 데리다가 해체주의적 과정에서 독해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일련의 서로 다른 경우들이 존재할 뿐이다.

     

    데리다는 텍스트의 분석을 위해 정신과의사가 정신질환 증세에 대처하는 것과 아주 유사한 ‘근접독해(close-reading)' 방법을 제시한다. 해체주의적인 ’근접독해‘는 텍스트를 ’심문하여(interrogated)' 그 방어벽을 무너뜨린 다음 그 안에 ‘새겨져있는(inscribed)' 이분법적인 대립 개념들을 찾아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해체주의는 텍스트를 아주 급진적인 방법으로 새롭게 읽어야하는 독해활동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텍스트의 문제는 아직 물가에 닿지도 않았다(the question of a text has not merely touched shore.)". 또한 '근접독해’에서는 경계선을 넘어 독자들에게 공인된 개념을 확장시키도록 강제하는 일종의 ‘오버런(overrun)' 현상이 일어난다.⑭ 다른 말로 하면 ’텍스트‘는 "더 이상 글쓰기가 끝난 시체(no longer a finished corpus of writing)"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something other than itself)"이 되고 있다.⑮

     

    한국의 문화유산과 전통적 가치는 샤마니즘, 불교, 도교, 유교같은 다양한 기원에서 유래하여 진화해 왔다. 우리가 이렇게 완전히 다른 문화적 상징과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신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참고 자료는 한국학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신화 해석에 대한 나의 접근법은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전체적인 관점은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될 것이다. 둘째 특정한 방법론은 텍스트에 대한 해체주의적 독해가 될 것이다. 셋째 주요한 참고자료는 한국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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