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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와
    이프 / 2013-10-22 04:28:17
  • 한나라 때 무덤이나 사당의 벽에 그려지고 새겨졌던 도상(圖像)들 속에서 무척이나 자주 등장했던 여신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여와(女㛂)입니다. 여와는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점에서 창조신의 신격을 갖고 있는 여신이지만, 한나라 때의 도상들 속에서는 복희(伏羲)라는 남성 신의 배우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나라 때의 도상 속에 등장했던 여와는 21세기 현재, 중국의 중원 지역-특히 산시성(山西省)과 허난성(河南省) 등-에서 여전히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돈황 석굴에 그려진 여와와 복희 chinabang.co.kr
     


    ‘도(道)’는 여성 원리



    모든 것을 낳고 기르며 우주의 질서를 세우는 여신, 그 여신의 이미지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아 가는 창세신화의 시작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세상 모든 신화의 시작에는 혼돈이 있습니다. 그 혼돈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에너지가 들어 있지요. 그 에너지가 바로 신화 속의 혼돈이며 모든 것을 낳고 기르는 힘, 즉 여성적 원리입니다. 신화 속의 혼돈이 만물을 품고 있는 여성 원리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이 바로 노자(老子)입니다.

    노자 역시 춘추(春秋)시대 초나라 출신입니다. 창조의 여신들이 등장하는 창세신화가 지금도 많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 문헌신화 속의 창세 여신인 여와에 관한 물음이 처음으로 나온 지역, 그곳에서 노자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신화 속의 여성 원리를 자신의 사상 속에 반영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노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도(道)’는 세상 만물을 탄생시키는 힘입니다. “도에서 하나가 나오고 하나에서 둘이 나오며 둘에서 셋이 나오고 셋에서 만물이 탄생한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원기(元氣)와 음양(陰陽) . 충기(沖氣) 등을 만들어내는 근원적 힘이 ‘도’에 있음을 봅니다. 그 ‘도’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자들이 수많은 견해를 낸 바 있지만 필자는 그것이 세상을 낳고 기르는 힘, 즉 여성 원리라고 봅니다.



    가부장 사회로 진입한 이후 모든 용어들이 남성 위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음(陽陰)’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음양(陰陽)’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아도 여성적 원리가 본래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만물을 낳고 기르는 힘, 그 거대한 에너지가 바로 ‘도’일 것이라고 믿는 까닭은 노자의 사상 속에 신화적 사유들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빈지문(玄牝之門)’ 이라든가 ‘곡신(谷神)’, 그리고 한 군데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 세상 만물을 적셔 주며 늘 변화하는 ‘물’의 이미지들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창세의 여신, 모든 것을 낳고 길러 주는 여신의 이미지와 통합니다. 독립적이고 강인하면서도 물처럼 부드러운, 한 군데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세상 만물을 낳고 기르는 힘, 그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도’이며 신화 속의 ‘혼돈’이고 여성 원리입니다.



    유가사상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채택되면서 남성위주의 질서가 세워져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의 무제에 의해 유가사상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채택되면서 남성을 위주로 한 질서가 세워지고, 이후 여성들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하늘로 비유되는 남성에 비해 비속한 존재로 여겨지면서 남성들이 확립해 놓은 질서의 세계로 편입합니다. 그러면서 신화 속에 존재했던 여성 원리는 점차 잊혀지게 된 것이지요.

    여와라는 여신이 가졌던 위대한 창세 여신으로서의 신격 역시, 동한 시대 이후 무덤 속의 화상석에 복희라는 남성 신과 함께 등장하면서부터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신화 속의 위대한 여신이 지녔던 독립적 여성 정체성은 이제 그 힘을 잃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노자에 의해 이어진 신화 속의 여성 원리, 만물을 낳고 기르는 힘으로서의 여성 원리는 민간 도교의 여신들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또 다른 측면에서 여성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기제로 작동합니다. 여와의 신화 역시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칩니다. 문헌 신화 속에서 여와의 신격이 복희의 배우자가 되면서부터 하락하기 시작한다면 민간 도교와 결합된 민중들의 전설 속에서 여와는 여전히 여신으로서의 독립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문헌신화에 등장하는 여와는 일반적인 여신의 신격 하락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선진시대 문헌인 『초사』나 『산해경』 등에 등장하는 여와에게는 남자 배우자가 없지만 한나라로 접어들면서 당시를 풍미하던 음양론의 영향으로 여와에게는 복희라는 남자 배우자가 생겨납니다. 무너져 내린 하늘을 보수했고 진흙으로 인간을 만든 창세 여신 여와는 유가가 통치이념으로 채택된 한나라, 특히 동한 시대에 이르러 복희와의 생식을 통해 인간을 생산해낼 수 있는 여신으로 신격이 변화합니다......

    여와의 신화가 지금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여와에 대한 신앙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은 허난성 저우커우시 화이양현과 시화현입니다....화이양현에는 복희를 모신 태호릉이 있으며 시화현에는 여와를 모신 여와궁과 여와성이 있는데 여와성에는 여와의 무덤도 있습니다.

     

     

                                                                            ▲태호릉 chinabang.co.kr

     


    동쪽에 위치한 화이양현에서 제사의 중심은 복희에게 있고 서쪽에 자리한 시화현에서 신앙의 중심은 여와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화이양현 태호릉의 공식적인 제사, 즉 정부측 인사들이 참여하여 진행되는 경건한 제사는 ‘인류의 시조(人組)’인 복희에게 바쳐지는 것이지만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민속 공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여성이며 묘회에서 여와와 심리적인 연관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여성입니다. 시화현의 경우, 복희는 아예 한쪽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여와성의 모든 건물은 여와에게 봉헌되고 있으며 여와가 태극을 들고 있지요. 심지어는 면류관을 쓰고 있는 여와의 상도 있습니다. 신앙의 중심이 여와를 비롯한 여신들에게 있는 것이지요.

     

     

                                                  ▲허난성 태호릉 복희묘에 있는 여와전의 여와상 cheramia.net 
     
                                                               


    여와 앞에서 온갖 말을 다 쏟아낸 여성들



    묘회가 열리는 첫날 새벽, 태호릉 광장에서 열리는 민속 공연들-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오신의 목적을 가진-에 참가한 여성들에게 “왜 이 공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이냐”고 물었더니 “남자들은 모두 외지에 돈벌러 나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 참가자들의 이러한 대답은 이 묘회에 참가하는 여성들이 여와와 자신들의 여성 정체성 사이에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었고, 묘회의 성격이 양리후이와 장추이링이 연구 조사를 행했던 15년 전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여와의 이름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인조(人組)’라는 이름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엔 ‘인조묘회’에서 복희와 여와가 똑같이 숭배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묘회의 안에서 만난 또 다른 일군의 여성들, 특히 여와신의 부름을 받은 무파(巫婆)들과 여와신이 몸에 붙은 접신 상태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여와는 복희의 ‘아내’가 아니라 여전히 독립적인 ‘큰아가씨’ ‘여와아가씨’였습니다. 여와를 ‘대고낭’ '노고낭(老姑娘)‘ ’노모낭(老母娘)‘ 이라고 부르는 그녀들은 여와의 독립적 신격을 고집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녀들은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했지만 여와는 그들의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시화현 쓰두강촌의 ’곤산(昆山) 여와궁‘을 지키는 나이 든 여성은 여와와 복희의 남매혼 이야기를 노래하면서 여와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눈물지었습니다.



    장추이링의 시화 여와성 묘회 조사 보고에서는 정신이상의 징후를 보이는 메이샤오솽의 경우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스물일곱쯤 된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가끔 정상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일단 여와상 앞에 앉으면 눈물을 흘리고 갑자기 얌전해지면서 억압된 말을 쏟아내곤 했답니다. 말하는 것에도 조리가 없는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저는 상차이 사람이에요. 15위안 때문에 남편이 저를 철창에 가두고 때렸어요. 아이 셋이 있는데 방법이 없어요.”

    묘회에 참가하여 여와 앞에서 울며 하소연하는 여성들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행위는 대부분 이렇게 어떤 시기, 어떤 사건 때문에 생겨난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억압된 고통은 그녀들 속에 똬리를 틀고 있고 그렇게 억압된 심리가 그들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며 그녀들을 여와 앞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여와 앞에서 온갖 말을 다 쏟아낸 그녀들의 병은 때로 치유되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것을 여와의 영험함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일종의 심리적 치유인 셈입니다. 이렇게 여와와 대화하면서 영혼의 치유를 받는 여성들도 있고 또한 여와신이 내려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병을 낫게 해주는 무파(巫婆)들도 있습니다. 그곳은 여와가 지배하고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대의 인조묘회가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복을 비는 축제일 뿐이지만 여와의 존재를 깊이 믿는 현지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 신앙의 현장이었습니다.



    **윗 글은 책 『동아시아 여신 신화와 여성 정체성』(차옥승,김선자,박규태,김윤성지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에서 발췌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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