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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회]백주또 여성, ‘따로 또 같이’의 삶
    이프 / 2013-05-27 04:12:39
  • 별다른 얘기를 해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백주또 여성을 간단히 그리고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밭에 나가 일하며, 며느리가 지어주는 밥을 받아먹지 않으며, 기어코 따로 밥을 해먹기를 고수하는 많은 제주 어머니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가난한데다 고온다습하고 바람이 강한 제주도의 기후 조건은 가옥의 규모를 적게 하도록 했다. 그래서 안팎거리라는 제주의 가옥구조가 탄생한다.

    안팎거리는 한마당 안에 안채와 바깥채(안거리와 밖거리), 외양간이 서로 분리된 다동분립형의 가옥구조다.

     

    이런 가옥의 구조는 제주도의 분산된 경지와 밭농사의 체제가 만들어 놓은 부부중심의 개체적 생활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부모와 자녀세대들은 한마당 안에 같이 살면서도 따로 살아간다. 부모님은 안거리에 살고 밖거리에는 아들이 산다. 그러다가 아들의 식구가 좀 더 넓은 집을 요구할 정도로 늘어나면 아들에게 안거리를 양보하고 노인들은 안거리보다 조금 평수가 적은 밖거리로 옮긴다.

    제주의 이 안팎거리 가옥구조는 정말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린 아이에게 한마당 안에 두 채의 집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당연히 두 채를 마주보게 그릴 것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지만 제주도의 안거리와 밖거리는 서로 등을 보이며 돌아서 있는 경우가 있다. 밖거리 즉 아들집의 엉덩이가, 안거리 즉 부모 집 얼굴로 향해있는 셈인데 이는 유교식 질서가 팽배한 분위기에서는 애당초 상상이 불가능한 가옥의 구조라 할 것이다.

     

     
                                       ▲마주보는 안팎거리(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안팎거리(2012년 성읍에서. 김정숙)

    이렇게 마주보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지은 까닭은 너무도 명백하다. 바람을 막거나 습도 조절 또는 채광을 위해 안거리를 남향으로 지어야 했다면 밖거리 역시도 남향으로 지어야 할 터였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 또는 주인과 하인과 같은 종속관계의 의식을 지양한 제주 사람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사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이런 가옥의 구조를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두 세대는 '따로' 또 '같이' 산다.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와 기지개를 켜면서 부모님의 상황을 살핀다. 아침밥도 따로 먹고 부모와 자식은 각각 자신의 밭으로 간다. 창고의 열쇠도 각자이다. 노인이 된 부모들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밭을 택하여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밭에 나가 일을 한다.

     

    부모의 권위적인 요구도 없고,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른의 눈치를 매번 살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또 적당한 시점이 되어서는, 안채를 며느리에게 내어 주고 자신은 바깥채로 옮겨가는 인간적 합리를 실천하는 많은 백주또 시어머니들에게 며느리들은 ‘시’자가 들어갔다고 시금치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짐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아들 며느리가 너무 바쁘면 오히려 부모님이 바깥채에서 식사나 가사 일을 맡아 주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경제활동에 참여했고 '안 쓰는 게 버는 것' 이라는 검소한 생활자세를 가졌다. 자녀들에게 기대기는 커녕 손자 손녀들의 진학이나 결혼과 같은 큰일에 입학금이나 이불값을 주는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생활의 경험이 적어 당황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방편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같이 살면서 '할망 손이 약손' 이 되어 경험이 없는 며느리의 육아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버릴 게 없는 그녀의 조냥정신(제주의 절약정신을 말한다)은 변해버린 밥을 가지고 오늘날의 요쿠르트와 같은 <쉰다리>라는 음료를 만드는 근검절약의 지혜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오늘날도, 제주의 어머니들은 푸성귀 한 장이라도 가져다주려 하지, 부모라 해서 당연히 자신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따로 또 같이' 의 생활체제는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압박감을 줄이고 고부간의 갈등을 줄여 주었다. 아들과 부모는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도움을 주고 의지한다. 서로를 억압하고 간섭하지도 않는다.

    한마당에 같이 살면서도 따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패턴에서 부모들은 권위적인 질서를 내세우거나 봉양 받는 것을 다소 포기하는 대신 그들에게 필요한, 늘 보호받고 외로움도 없애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부지런함이 습성화되어 있으며 동시에 자립적인 이들은, 노인들만 따로 살아갈 경우 가지게 되는 경제적인 불안, 심리적인 외로움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젊은 자녀들 역시 그들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받으면서 동시에, 자식의 도리라는 지나친 압박감에서도 놓여날 수 있었다.

     

    자식들의 친효를 이끌어낸다.

     

    백주또 여성들은 의무감이나 위선적인 마음으로 형식적으로 행하는 효가 아니라 비교적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자식들의 친효를 이끌어내는, 거역할 수 없는 지혜로움과 모성을 가지고 있다. 도리와 애정으로서의 효도는 종속적 부모자식 관계를 극복한, 개체적이고 인간적인 관계에서 우러나올 때 진실 될 수 있을 것이다.

     
                                                       ▲돌담(위,강정효 사진). 따라비 오름 근처에서(2012년 김정숙)

    제주는 어쩌면, 자연환경도 ‘따로 또 같이’다.

    하나하나의 돌담은 모양도 색깔도 다 제각각이고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각각 하나로 존재하면서 또 커다란 전체를 이루는 돌담이 된다.

    오름도 그렇다. 하나씩 각각 저마다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전체적으로 커다란 한라산을 이룬다. '따로' 가, '같이' 가 서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같이 존재한다.

     

    고부간은 사실 심리적, 감정적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는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다. 이런 고부가 좁은 집에 물리적으로 같이 동거함으로써 침범 당하기 때문에 심리적 감정적으로 갈등이 생기고 서로 더욱 불편해지는 것이다.

     

    보통은 여러 조건에 의해 서로 별거함으로써 고부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셈이지만 노인들의 외로움과 보호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녀인 젊은이들의 당연한 과제라면 제주의, ‘따로 또 같이’의 가옥구조는 거기에 대해 재고해 볼 하나의 제안을 한다.

    노인들에게는 경제력과 보호의 구조를, 젊은이들에게는 독립과 보은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안팎거리 가옥구조는 물리적인 가옥의 패턴에 대해서도, 현대라는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구성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 그것은 관계와 관습이 요구하는 것들에 일방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삶의 개체성과 삶의 상호부조성에 늘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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