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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회]제주, 신화, 여신 - ‘오래된 미래’
    이프 / 2013-05-14 11:20:36
  • 척박한 땅에서 많은 아이들을 부지런한 것 하나로 키워야 했던 백주또처럼 제주에는 도둑질할 잉여분이 창고에 비축될 여지가 없었다. 또한 화산암설들에 의해 조각조각난 토지는 소규모의 생산과 저생산 체계로 이어져 부의 집중을 막고 비교적 평등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백주또가 아들 딸 손자들에게 ‘네 살 곳으로 가서 좌정해라’ 일렀듯, 제주의 아들 딸들은 살기 위해서 조각난 토지를 찾아 분가해 따로 살았다.

    99칸 가옥도, 만석꾼도, 평생의 소작농도, ㄷ자 가옥과 많은 곡식을 말리는 넓은 마당도, 대청마루도, 할아버지의 에헴 소리에 온 가족이 숨죽이는 일도 제주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다큐<오래된 미래>(1993, 영국)

    척박한 땅에 내가 살기 위해서는 함께 수눌며(품앗이) 일해야 했다.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도움을 준 사람까지 생존에 타격을 주는 일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삼가야 했다.

    애를 돌보며 밭에 김을 매는 방법을 궁리해야 했으니 애기구덕과 애기걸렝이(주로 아이를 업을 때 쓰는, 너비가 좁고 긴 헝겊으로 된 띠)가 만들어졌다. 몇 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노쇠한 노인들도 먹고 살아가야 했으므로, 그들을 위해 할망바당을 만들었다.

    걸렝이에 업힌 아이들도 좋았을 것이고, 할망바당을 보며 할망이 되어온 할망들도, 최소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는 않게 살려 노력했을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아이들과 노인들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도둑도 없고 대문도 없으며 거지도 없는...

     

    도둑도 없고 대문도 없으며 거지도 없는 제주의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다. 모두 가난했고 서로 타격을 주지 않으며 또 도와가며 열심히 일해야 겨우 먹고 입을 수 있었으니 어울려 같이 나누면서 살아야만, 살 만하고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검약과 부지런함은 필수였고 평등한 분위기와 상호부조는 불문율의 필요선(善)이니, 개인적인 요구와 공동체적 필요의 절묘한 조화였다. 게다가 저기, 저 부잣집에 내가 포함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 저기서 쫓겨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 같은 것은 어차피 없었다.

    그런 불안과 공포심이 없으니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깨지면 나까지도 언제든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 공동체에 대한 돈독함을 유지시켰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사진출처/오마이포토)

     

    이것은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미개발로 인해 ‘돌연 얻어진 발전’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새삼 인식해야 할 ‘오래된 미래’다.

    제주의 오래된 모습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그리고 100년 후로 안내한다. 백주또는 그런 제주 사회가 만들어 낸, 개체의 공동체와의 자유로운 연대가 가능한 지점을 시사하는 표상이다.

     

    ‘따로 또 같이’의 원형

     

    지금도 많은 현실의 모습으로, 신화로, 어른들의 경험으로 제주의 삶 속에 남아있는 부분은 그녀의 메시지를 믿음직스럽게 한다.

    그녀가 주는 메시지 중 호감이 가는 부분은, 충분히 ‘따로’ 즉 개체를 인정하고 전제한다는 점이다. ‘개체’의 개성, 자유, 경쟁, 욕망과 본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동시에 ‘공동체’를 억압적이고 위선적인 나눔과 배려(이건 강제와 강요다), 또는 기계적인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연대로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에 의해 만들어진 제주의 문화 태반이 그런 모습을 담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바당문화에서도 밭문화에서도, 가족문화에서도 ‘따로 또 같이’의 메시지와 형태는 흔히 찾을 수 있다.

    여신 백주또도 그랬다. 아들, 딸, 손자들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제우스처럼 일인자로 군림하면서 제멋대로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각각, 제각기 살도록 한다.

    제주도의 해녀들은 물질을 한 후 불턱에 앉을 때, 불턱의 가장 따뜻한 곳에는 물질을 가장 잘하는 해녀를 앉게 한다. 나이든 할머니 해녀가 거기 앉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 다시 들어가기 전, 보통은 건강하고 능력이 뛰어난 젊은 해녀들이 그 곳에 앉아 불을 쬔다. ‘따로(개인)’의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인정하고 장려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서 그쳤다면 ‘개인’만, 개인의 욕망과 능력만 인정하는, 비정하고 각박한 지금의 현실과 뭐가 다르랴. 그러나 제주의 해녀들은 동시에, 가난한 이웃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바당을 만들고 뭍에서 가깝고 얕고 따듯한 바다를 노인들을 위한 할망바당으로 구획하면서 ‘같이(공동체)’의 약자에 대한 동행과 나눔을 동시에 실천했다.

    각각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별로 고민하지 않는 삶도 공동체에 대한 끈끈함을 유지 하게 도움을 주었다. 섬이라는 시공간의 한계, 자원과 재료의 부족은 절약과 재활용의 생활을 습관화시켰다. 땔감과 양념이 부족했으니 음식은 가능한 재료 그대로를 먹어야 했다. 메밀조베기(수제비)는 물만 끓으면 반죽을 떼어 놓는 순간 순식간에 익어 땔감이 부족한 제주에 딱이다. 옷감이 모자라니 질기고 땀이 잘 흡수되는 갈옷을 만들었다. 돼지고기는 물에다 집어넣고 단순히 삶아 먹었다. 고기를 삶은 물에는 모자반을 넣어 몸국을 만들었다.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던져버리지 않는 식생활, 의생활의 문화이다.

     

    ▲리싸이클링의 지혜. 제주 사람들은 ‘통시’에서 똥돼지를 길렀다. 돼지는 인분과 볏짚, 음식물찌꺼기를 먹으면서 자신의 배설물을 배설하고 부지런히 통시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좋은 거름을 만들어 냈고 척박한 땅에 시비했다.(사진은 성읍 민속촌에서 찍은 것)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격과 거리를 줄이는 게, 재료와 그 재료로 만들어진 상품 사이의, 지도자와 민중 사이의, 중심과 주변 사이의 간격과 거리를 줄이는 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더 좋은 세상의 웰빙라이프 아니던가. 아직 제주는 그런 오래된 원형과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서 지속가능한 삶과 공존이 유토피아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태 내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제주의 여신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메시지를 전해주며 점점
                                               풍요로워지는 제주를 표현한 그림. (제주 그림책연구회원들의 공동작품 중 일부)

    겨우 먹을 만큼만 생산되고 서로 도우며 살야야 할 만큼 자연환경이 척박해서, 나나 남이나 고만고만하게 못살았던(풍족하지 못했던) 오래된 모습이, 현재를 겪으며,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가리키는 지점은 명백하다.

    고만고만하게 잘 살면 될 일!~. 간격을 줄이는 일. 과도하게 널려있는 불평등의 철폐. 그것이 백주또 여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다.

     

    지성인 백주또

     

    밭에만 다니느라 사유의 시간이 없는데도, 그녀의 행동은 사유하는 인간 이상이다. 그녀는 실체들의 내적 관계들을 인식하고 언제나 개인과 공동체에 두루 상승하는 원리를 실천한다.

    백주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내부를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원형이다. 그녀 자신이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주는 중심점이다. 가치관의 혼란과 일상의 허덕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우뚝 서 있다.

     

    백주또 원형의 인식-대응 방법은 자기를 응시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이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부지런히,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신의 원칙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늘 변동되는 ‘상황’과 고정된 ‘관계’의 갈등 속에 그런 자아를 잘 섞어내는 방법을 고민할 뿐이다. 상황에 따른 진리, 진실을 쫓는 그녀의 개체성은 ‘나’, ‘개인적인 관계’ ‘나의 이익, 우리의 이익’이라는 항목 앞에서 자꾸 빠져나와 자신을 골똘히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존중, 배려, 나눔, 관용 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형성하게 했다.

     

    때문에 자신이 그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를 늘 고민하는 것은 그녀의 영혼의 문제인 것이며 의지의 문제이다. 처음 인식과 의지로 행해 왔던 일들은 어느덧 그녀에겐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게 더 나은 삶인지는 삶을 살아오면서 이미 정해졌다.

    매일 마주치고 변화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중심된 지속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훌륭한, 진정한 지성을 보게 한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할망, 오래된 사람, 지혜와 연륜까지 묻어 나오는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마라도 할망당(애기업개당). 신화 속에서의 애기업개는 어린 소녀였다.
    현실 제주에서는, 할망들이 애기를 걸렝이에 업고 많이 다녔다. 애기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할아버지도 자주 업어주었다면 좋았으련만 할머니들이 물질이며 밭일이며 돗통시(돼지집)에 것(먹을 음식)을 주고 종종 뛰어 다닐 동안 그 많은 할아버지들은 무얼 하며 지냈을까?

    백주또 원형은 객관적이며 원칙에 강하고 무뚝뚝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여성들의 원형이다.

    그녀는 합목적적인 판단과 함께 기본적인 선이라는 생활의 원칙을 정하고 이를 절대로 파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타인들에 대해서도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으며 또 자신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공공의 선을 넘는 행동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살아가면서 전개되는 주변의 사건들에 의해 쉬 사기가 고양되지도, 또 비참해지지도 않는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나 부지런하고 검약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일을 처리한다.

    심드렁한 듯, 무심한 듯,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튀지 않는 그녀는 멋 없고 개성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 도리가 평상적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내면화되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를 주는 이 유형은, 사실은 늘 이웃들의 뇌리 속에 ‘진실’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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