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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회]‘관계’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노마디즘
    이프 / 2013-04-30 11:10:59
  • 무속인들은 굿을 할 때 제주의 송당 지역을 ‘불휘공’이라 부른다. ‘불휘공’은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뿌리, 즉 신앙의 가장 근원적인 뿌리가 되는 곳’이란 뜻이다.

    제주지역은 전체적으로 볼 때도 비교적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땅이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까지 송당은 사냥과 방목을 통한 제주의 중심적인 생활터였고 신앙의 중심지였다.

    바람웃또(바람 위에 좌정한 신), 하로산또(한라산의 신)이며 산신인 소천국은, 제주 지역 전체와 그리고 제주의 불휘공인 송당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신이었다. 백주또가 송당의 중심 신이 된 것은 농경을 시작하면서다.

     

    소천국은 이동의 문화를 표상

     

    송당 신화에서도 그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신화를 보면, 원래 한라산을 떠돌며 사는 토착신인 소천국은, 외지에서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들어온 백주또와 결혼을 하고,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게 되면서 가족부양력의 문제에 부딪힌다. 백주또가 농사를 짓자고 권유하고 소천국은 그 제안에 동의하여 지금까지의 사냥 생활을 접고 밭으로 나간다.

    사냥의 식성을 가진 소천국은 배가 고파지자, 밭을 가는데 써야 할 소를 잡아먹는데, 한 마리로는 부족해 옆에 있던 남의 소까지 싹뚝 잡아먹어 버린다. 농사를 지을 소였지만 자기네 소를 먹는 일이야 예사로 있을 수 있다고 넘어갔다. 하지만 남의 소까지 먹어버린 것에 대해서 백주또는 아무리 자기 남편이지만 용납할 수 없다. 백주또는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분산하자고 요구한다. 결국 소천국은 알(아래)송당에 내려가 원래 하던 사냥을 계속 하면서 살고, 백주또는 송당에 좌정하여 마을신이 된다.

     

    소천국은 비정착의 질서, ‘이동의 문화’를 표상한다. 반면 아내인 백주또는 농경과 ‘정착 문화’의 표상이다. 신화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의 흐름, 신들의 속성, 신들 간의 관계나 그와 관련된 당시의 제주 사회를 상상해본다면 소천국은 목축신이라기 보다는 ‘이동’에 방점을 찍고 ‘이동신’으로, 또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들어왔지만 백주또 역시 농경보다는 ‘정착’에 방점을 찍고, ‘정착신’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더 맞아 보인다.

    여전히 제주 경제의 많은 부분은 사냥에서 시작하여 방목과 바다를 통해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주또는 단순히 농경생활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그 농경 생활이 가져다주는 ‘정착’의 개념으로, 소천국은 그에 상대하는 ‘이동'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2013년 3월 24일 제주에서 열린 굿페스티발, 제주큰굿과 새남굿, 별신굿이 재현되었다.
                                                사진은 제주큰굿 편에서, 어김없이 백주또와 소천국이 불려 들여지는 장면이다.

    부의 축적과 인구집중, 사회의 규모적 발전은 ‘정착’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그녀의 좌정은 결국 ‘정착’에 대한 송당 사람들의 희구를 의미한다. 백주또가 내쫓은 소천국은 그가 가지는 비정착적, 이동적인 요소들이다.

    식성, 본성이 다른 부부가 같이 살아가기 어렵듯, 이동의 문화와 정착의 문화는 서로 친화하기 어렵다.

    결국 소천국과 백주또의 갈등은 정착문화와 이동문화 간의 대립이고 갈등이며, 이는 송당이라는 마을지를 고려해볼 때 목축, 조와 감자 등의 농경적 정착문화와 사냥이라는 이동문화 간의 갈등으로, 구체적으로 접목시켜볼 수 있다.

     

    과거, 비교적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땅의 제주에서 송당은 사냥에 적합한 곳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최고 마을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마을이 생기고 농경과 정착생활이 새로운 지배적 질서가 되면서 마을은 소천국의 관리가 아닌 백주또의 관리를 요구하게 되었다.

    소천국의 이미지, 즉 이동의 규범과 질서들은 배제되었고, 대신 정착사회의 규범과 질서의 이미지로서, 여신 백주또가 전면 부각된다.

     

    소천국의 문화에서 소를 먹은 것도 그들의 습성이지 나쁜 행위가 아니다. 한 마리로는 입가심에 불과하니, 또 한 마리를 먹어치워야 하는 것도 대식가인 그들의 식성일 뿐이다. 또한 수렵과 채집이라는 이동의 문화에서 자신들이 늘 해 왔던 대로, 옆에 있는 또 한 마리의 소를 잡아먹은 것이지 도둑질해서 먹은 게 아니었다. 채집과 수렵의 문화에 네 것, 내 것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백주또의 좌정은 농경적 질서의 선택

     

    농경사회, 정착사회의 이데올로기는 한 곳에 머무르고 주위의 땅을 넓히면서 관리하는 가부장제와 일부일처의 구조체제를 요구했지만, 늘 이동해야하는 소천국의 본성은 이와는 맞지 않았다. 이동의 소천국 문화에서 묶어두지 않는 건 기본이다. 쉽게 떠나고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인간관계의 유연함, 가벼움은 그 문화의 바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천국에게 필요한 건 다처(첩)의 제도다. 정착생활에서의 부부관계, 가족관계는, 그에게는 버거운 것이다.

     

    신화를 보면 백주또는 이혼을 하고 아이를 혼자 키운다. 아이가 조금 자라자, 아이에게 아버지를 보여줄 요량으로 소천국을 찾아간다. 어린 아들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소천국의 무릎에 앉아 수염을 잡아당기며 재롱을 피운다. 소천국은 그런 아들을 ‘버릇없다’ 하면서 무쇠석함에 담아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동’의 소천국에게 아이의 재롱을 받으며 한곳에서 오손도손 살아야하는 가족관계는 자신의 능력을 막아버리거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물이다. 그러기에 그는 백주또와 갈라섰고, 아들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무쇠석함에 담아 바다 속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반면 백주또의 문화에서, 소는 농경생활과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겨우 정착하고,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아직은 나나 남이나 가난하기 짝이 없어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그 집의 생명들을 훔치는 일이 되어버릴 만큼 위협적인 일이 되는 것인데, 그 집의 농사짓는 소를 훔치다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도둑질을 소천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댄 것이다. 먹고살 입이 점점 늘어나면서 변화에도 둔감한 소천국의 생산력은 무능력해 보일 뿐이고 아이의 재롱 속에 푹 빠지지 않는 아버지는 무책임하며 무정하다.

    정착의 문화에서 소천국의 그런 본성들은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결국 백주또는 소천국과 살림을 분산한다.

     

                                                                                  ▲백주또/ 홍진숙 그림

    송당에서의 백주또의 좌정은 농경적 질서-마을, 정착, 축적-의 선택이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송당 사람들의 희구를 의미한다. 백주또와 송당사람들이 내쫓은 소천국은, 소천국이 가지는 이동적인 문화다.

     

    백주또라는 여신이 제주신화의 가장 중심적인 신이 된 이유는, 정착을 위해 농경이 채택되었고, 농경의 신 대부분이 여성신인 경우가 많듯 정착의 질서에 백주또라는 농경신의 이미지가 좀 더 적합해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반복적 대기의 순환과, 그러면서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자연의 혼란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끈기, 세세함이나 부지런함 등과 같은 여성적 이미지들이 농경의 생산방식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제주신화의 중심에 있는 이유

     

    한반도지역이나 다른 곳에서처럼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와 그에 어울리는 남신 중심의 신앙체계가 제주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부의 축적이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에게 집중되기 어려웠던 토지의 척박함과 분산성에도 원인이 있다.

     

    여기에 한량처럼 사냥이나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을 많은 제주의 소천국에 비해, 애기구덕을 끼고, 밭과 바당밭을 일구면서 하루 종일 뛰어다녔던 백주또나 가믄장아기와 같은 현실 제주 여성들의 강한 독립성과 경제적 능력이 백주또를 여성신인데도 사실상 최고의 자리라 여겨지는 불휘공의 당신으로 좌정하게 했다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백주또가 제주의 중심 신이 되고 뿌리가 되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가지는 노마디즘 덕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신화에도 볼 수 있듯 소천국의 노마디즘은 사냥을 하기 위하여 공간적 이동만을 행했던 고답적인 것이었다. 그의 노마디즘은 기존의 특정한 삶의 방식에만 매달려 살아가면서 안주하는 삶의 행태지 진정한 노마디즘의 자세가 아니다. 그의 노마디즘은 헐벗겨진 황량한 지역만을 양산해낼 것으로 보인다.

     

    한 장소에 앉아는 있었지만,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재배치하는 창조적 행위의 주인공은 오히려 백주또다.

     

    남편이 잘못했더라도 우선은 남편을 두둔하거나 감싸고도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투영시켜 아이들을 키우지도 않았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많아지자 삶의 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소를 잡아먹어도 그럴 수 있다고 일단 받아들인다.

    남의 소를 잡아먹어버린 남편이지만 대부분의 아내가 그렇듯, 남편의 행동에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잠히 있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남편의 싸움이 나면 우선은 자신의 남편을 두둔하고 잘못을 감싸고도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녀는 그러지도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살아가는 소천국에게 그 준엄했던 시절에 살림을 가르자고 제안한 것도 백주또다. 고생하며 혼자 키워 온 아들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려고 찾아가기도 한다.

     

    관계는 집단이기주의나 비타협적 인식의 온상이 되기 쉽다. 배제와 차별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모성’은 자칫 가족이기주의에 빠지기 쉽고 부부관계 또한 그렇다.

    그러나 백주또는 ‘어머니’에 맹목적으로 매몰되거나 ‘아내’라는 관계 속에 매몰되어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 소천국이 바다에 던져버린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돌아오자 아버지 소천국은 도망가 버리지만 어머니 백주또는 “네가 살아갈 자리로 가서 좌정하고 살아가라”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천국의 ‘이동’은 힘 센 아들에 대한 도망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 백주또의 정착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에, 다른 배치를 이루어내도록 하는 도전, 진정한 노마디즘이었던 것이다.

    백주또는 아들, 딸들을 자신의 휘하에 두면서 영역을 넓히며 군림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열여덟 아들은 제주의 전 지역으로 나가 저마다 마을을 세우고 마을의 당신이 되었던 것이다. 스물여덟의 딸도, 손자들도 제각각 마을을 세우고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 딸들이라고 차별하지 않았으며 나이가 어리다고 제외시키지 않았다. 자신만의 욕심으로 늘 똑같은 방법을 고수하며 안주했던 소천국과는 달리 백주또는 새로운 세상을 구성하는 새로운 배치를 해갈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욕망을 옮겨놓는다. 그녀에게 고착된 관계는 없다.

    그녀가 제주신화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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