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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어머니' 여신
    이프 / 2013-04-23 03:28:59
  • 수천 년 세월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인류 문화에 대해 알려주는 증거들 가운데 일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문명의 요람으로 인정받은 반면 고대 유럽은 문명이 낙후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나중에 잠시 미노아와 그리스에서 문명이 발달하지만 그마저도 동양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새롭게 등장한 과거의 영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믿었던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는  『고대 유럽의 여신들과 신들 The Goddesses and Gods of Old Europe』에서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남동 유럽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화 집단들의 집단적 동질성과 성취를 인정하면서 고대 유럽 문명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등장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선구적인 저서에서 김부스타는 에게 해와 아드리아 해(섬까지 포함하여)에서부터 북쪽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남부 폴란드, 서부 우크라이나까지 이어지는 지역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의 목록을 정리하고 분석했다. 

     

      
                          ▲마리야 김부타스와 그녀의 기념비적 저서『여신의 언어  The Language Of The Goddess』 

    수천년 전에 놀라운 수준의 평화로운 문명이 존재했다

     

    7000년 전 남동 유럽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는 원시 정착민이 아니었다. 김부타스에 따르면 '그들은 2,000년 동안 꾸준히 농사를 짓고 풍요로운 강 연안의 계곡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물질적 생활 수준을 개선했다. 밀, 보리, 살갈퀴 콩, 완두콩 등 다양한 콩 작물을 재배했고, 말을 제외한 오늘날 발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가축을 길렀다. 도기 기술과 뼈와 돌로 작업하는 기술이 발전했고, 기원전 5500년까지 동부 중앙 유럽에 청동 야금술이 전해졌다. 기원전 5000년대에는 무역이 성행하고 의사 소통 능력이 발달하여 문화 발전을 자극했다.(.......) 문자를 새긴 도기가 발견되어 기원전 6000년대부터 돛대를 단 배를 이용한 사실이 입증되었다.”

     

    기원전 7000년경에서 3500년경 사이에 초기 유럽인들은 전체 기술 문화를 동반한 사회 조직체를 개발했다. 그들은 복합적인 종교 기구와 정부 기구들을 만들었고, 청동이나 금으로 장식품이나 도구를 제작했으며, 특히 문자로 보이는 기호를 개발했다. 김부스타는 ‘만약 문명을 환경에 적응하고 적절한 예술, 기술, 문자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고대 유럽 문명은 매우 성공적이었음에 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고대 유럽인을 끊임없이 남쪽을 침략하고 결국 로마까지 약탈한 부족민, 특히 학살에서는 로마인조차 능가하는 야만인 정도로 평가한다. 때문에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고대 유럽 사회를 재평가해야 했는데, 특히 고대 유럽 문명이 매우 평화로웠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김부스타는 ‘고대 유럽인은 결코 급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높은 언덕 같은 불편한 장소에서 살지 않았다. 후기 인도-유럽인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에 언덕을 만들고, 성곽을 짓고, 거대한 돌벽을 쌓아 언덕을 에워쌌던 것과는 달리 고대 유럽인은 배경이 아름답고, 맑은 물이 풍부하며, 토양이 부드럽고, 동물을 기를 수 있는 초원처럼 살기 편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때문에 빈카(Vinca), 부트미르(Butmir), 페트레스티(Petresti), 쿠쿠테니(Cucuteni)같은 정착지는 전망은 뛰어났지만 공격해오는 적을 방어하기는 어려웠다. 강력한 성채와 공격용 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사실로 미루어 그들은 예술을 사랑하고 평화를 지향했던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차탈휘위크나 하실라에서 약1,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이 있었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고대 유럽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남성 지배가 일반적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김부타스는 ‘남성과 여성은 노동을 분배하기는 했지만 어느 쪽도 우월한 지위에 있지는 않았다. 무덤 쉰세 개가 발견된 빈카 공동묘지에서도 남자와 여자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 수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 빈카에서 발견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결코 가부장제가 아닌 평등한 사회의 특징을 확인해준다. 바르나(Varna)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거기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가부장적 지위 체계를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모계사회였던 고대 유럽, 계급이나 성적 차별이 없는 평등 사회

     

    요약하자면, 차탈휘위크처럼 고대 유럽도 계급이나 성적 차별이 없는 무계층 사회 혹은 평등 사회였다. 김부타스는 여느 학자들과는 달리 그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진실을 강조할 줄 아는 선구적이고 뛰어난 이 고고학자는 고대 유럽 사회에서는 우리가 단지 ‘인간의 본성’이라고 배웠던 성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증거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거듭 주장했다.

     

    김부타스는 ‘고대 유럽 사회가 남녀평등 사회였다는 사실은 실제로 고대 유럽의 모든 공동묘지에서 출토된 부장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많은 사실에 근거하여 고대 유럽 사회가 모계사회였다고 주장했다. 곧 혈통과 상속이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어졌으며, 여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김부타스는 '제단을 모신 집과 사원 모형의 유품에서 그리고 실제 사원 유적지에서 여성들이 여신을 위한 다양한 의례를 준비하고 감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례에 쓸 도구와 제물을 준비하는 일은 힘든 작업이었다. 사원 모형들에서 곡식을 빻고 신성한 빵을 굽는 모습을 볼 수 있다.(......)건물의 절반을 차지하거나 사원의 아래층에 있었던 작업장에서 여성들은 제례에 사용할 도기를 만들고 장식했다. 사원의 제단 옆에는 신성한 용도의 의상과 사원을 장식할 직조물을 짜내는 베틀이 놓여 있었다. 세련된 항아리와 조각품 등 현재 남아 있는 고대 유럽의 가장 훌륭한 유물들은 대부분 여성들이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고고학자들은 지금도 삽을 들고 여신 숭배가 전체 삶의 중심이었던 고대 공동체가 남긴 예술적 유물들을 발굴하고 있다. 김부타스는 자신이 발굴한 유물들과 다른 유적지에서 발견된 3,000개가 넘는 유물들을 정리하여 1974년에 책을 펴냈다. 당시까지 3만개에 이르는 작은 진흙 조각품들, 대리석과 뼈, 청동, 금 등으로 만든 조각품들이 발굴되었고, 제기, 제단, 사원 그리고 항아리와 사원의 벽에 그려진 그림도 아주 많이 발견되었다.

     


    **윗글은 책 『성배와 칼』(리안 아이슬러 지음, 김경식 옮김)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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